포항지역 전문건설노조가 비노조원은 고용하지 못하도록 한 단체협약상의 '조합원 우선 채용'(일명 독점적 노무공급권) 조항을 포기하는 등 지난달 사용자측과 마련한 잠정합의안을 수용해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

파업 73일 만이다.

노조는 11일 새벽 포항건설협회측과의 마라톤 협상 끝에 '조합원 우선 채용' 조항을 포기하고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사용자측 의견을 수용키로 합의했다.

노조는 그동안 '조합원 우선 채용'이라는 독점적 노무공급권을 갖고 조합원들에게 파업 참여를 강요하는 등 횡포를 부려왔다(한경 8월21,24일자 보도).노무공급권 포기로 노조 조직이 급속히 와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조는 △조합원 채용 차별 금지 △임금 5.2% 인상 △토요근무 할증 강화(오후 5시까지 근무하면 일당의 1.5배) 등의 잠정합의안을 갖고 이르면 12일 조합원 찬반투표에 들어가 가결되면 즉시 현장에 복귀키로 했다.

잠정합의안 통과는 거의 확실시된다.

비록 장기 파업은 끝났지만 이번 사태로 포항건설협회 소속 100여개 회원업체들은 최악의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노조원들 또한 월급 한푼 받지 못했다.

포스코는 제3의 세력에 의해 본사를 점거당한 데 이어 파이넥스 등 35개 공사에 차질을 빚어 3000여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로 인해 포항 서민경제도 최악의 불황에 휩싸이고 있다.

이번 사태는 그러나 노조의 '막가파식' 강성 투쟁은 법과 원칙에 의해 철저히 무너진다는 교훈을 남겼다.

포스코는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공기지연'만큼은 절대 용납치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따라서 노조는 포스코가 올 연말 완공을 목표로 첨단 제철설비인 파이넥스공법에 공을 들이고 있어 파업에 돌입할 경우 회사에 압박을 가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노조가 지난 7월 포스코 본사를 불법 점거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포스코는 건설노조를 상대로 16억여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1970년 포항제철 건설 이후 계열사인 포스코건설에 주던 공사(파이넥스 3차분)를 이례적으로 서희건설에 주면서까지 불법 파업에 대한 강력한 근절 의지를 보여왔다.

포항시민들의 힘도 컸다.

지난달 5만여명의 시민이 나서 파업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1989년 4월 창립 당시 조합원이 200여명에 불과했던 포항건설노조는 강경 파업을 벌이며 조합원 3000여명의 대형 노조로 변신했다.

하지만 결국 명분 없는 무리한 파업에 조합원들이 등을 돌리면서 스스로 해체의 길로 빠져들었다.

이번 파업이 장기화된 데는 민주노총의 탓도 컸다.

민노총은 포항건설 노사 문제에 깊숙이 개입해 노-정 대리전으로 사태를 악화시켰다.

노조원 하중근씨가 사망하자 포항 서민의 경제권까지 볼모로 삼아 장기 파업을 주도했다.

포항=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