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잇따라 세계적인 연구개발 성과들을 내놓고 있다. 와이브로(휴대인터넷)의 미국 진출에 이어 4세대 통신기술 성과를 발표하더니 이번에는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개발에 완전히 탄력이 붙은 느낌이다.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유인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빈곤의 종말(The End of Poverty)'이란 책에서 경제성장에 실패하는 나라의 8가지 유형을 적시해놨다. 가난 그 자체가 함정이 되어버린 나라,지리적 여건에서 불리한 나라,빚의 함정에 빠진 나라,정부 실패가 발목을 잡는 나라,문화적 장벽에 갇혀버린 나라. 지정학적으로 고립된 나라,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나라,그리고 인구의 함정에 빠진 나라 등이 그것이다. 이게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나라에 관한 내용만은 여전히 주목해볼 만하다.

제프리 삭스는 부유한 나라는 큰 시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시장의 크기와 혁신을 연결지어 설명한다. 예컨대 기업이 연구개발로 얻는 수익의 정도는 시장의 크기에 달렸으니 시장이 커질수록 그만큼 연구개발을 할 유인도 커진다는 얘기다. 반대로 시장이 작을 경우 아무리 발명에 대한 보호 등 지식재산권 제도가 잘돼 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는 이런 혁신의 갭 때문에도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가 갈린다고 했다.

미국 같은 나라를 생각해보면 그의 얘기는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인구도 많고 소득도 높은 미국에서 혁신에 성공하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아직 미국에는 못 미치지만 중국 인도 등 이른바 신흥국가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잠재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나라들은 혁신이 불가능하고 경제성장도 어려운가. 규모는 작아도 혁신이 왕성하게 일어나 부유하게 된 나라도 적지 않다. 벨기에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스위스 등이 그렇다. 제프리 삭스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제프리 삭스가 말한 것은 '나라의 크기'가 아니라 '시장의 크기'였다. 나라는 작아도 시장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첨단 기술제품을 큰 시장에 팔면 그게 모두 그 나라 시장이다. 여기서 글로벌 기업도 나온다. 국제무역(이를 개방이라고 해도 좋다)은 이렇게 나라의 크기와 시장의 크기를 다르게 만들고 있다.

다시 삼성전자 얘기로 돌아와 보자. 삼성의 전체 연구개발 투자는 대한민국 정부의 연구개발예산을 웃돌 정도다. 지금의 성과는 그렇게 기술투자에 매진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삼성이 기술투자에 매진하는 유인 측면에서 보면 다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삼성은 지금 한국이란 나라가 아니라 세계시장을 타깃으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와이브로 미국 진출이 이를 말해준다. 낸드플래시 역시 세계시장이 그 대상이다. 시장이 크면 혁신의 유인도 그만큼 큰 것이다.

성공하면 기업만 좋은 게 아니다. 이런 글로벌 기업들이 많이 나오면 국가 전체 경제성장도 그만큼 올라가게 돼 있다. 나라로 봐서도 시장은 역시 클수록 좋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