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의 정석' 아세요? ‥ 대충하고 죽으면 '분란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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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박모씨(72)는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100억원대의 부동산을 갖고 있는 재산가다. 부동산 말고 숨겨놓은 재산도 상당하다고 한다. 박씨는 그러나 유언장을 쓸 생각이 없다. "절차가 매우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유언을 통해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고 나면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땅에 뚝 떨어질 것이 걱정"이란 게 박씨측 변호사의 설명이다.
지갑이 두툼해진 노년층이 늘고 있지만 유언을 통해 재산을 배우자나 자녀에게 물려주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13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유언 관련 소송은 2002년 109건,2003년 140건,2004년 118건 등으로 100건을 겨우 웃돈다. 연간 2만건이 넘는 상속 관련 소송과는 비교가 안된다. 유언문화가 아직 정착이 되지 않아 사건이 많지 않은 게 그 이유이다.
금융권에서 유언신탁이나 특정금전신탁 등 유언 관련 상품이 출시된 지도 벌써 6년이 넘었지만 취급실적은 바닥 수준이다. 신한은행 서울파이낸스 PB센터 이정우 팀장은 "재무상담을 해오는 사람들에게 유언장 작성을 권유하지만 실제 유언장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유언문화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데는 가부장적인 권위문화와 함께 까다로운 법적 요건 때문이다. 정모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씨는 후처에게 전재산을 물려주기로 했으나 잘못된 유언으로 인해 한을 안은 채 세상을 떴다. 지난 3월 대법원은 정씨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병이 깊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후처가 미리 작성한 쪽지내용을 변호사가 읽어주고 정씨에게서 '음''어'하는 정도의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것은 민법 제1070조 '구수증서(유언자의 말을 정리해 문서로 남긴 것)에 의한 유언'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이처럼 유언은 법에 정한 엄격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요식행위다. 법원은 민법에 정해진 요건에 조그만 흠결이라도 있으면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민법에는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등 5가지의 유언방식이 규정돼 있다. 이 중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이 가장 일반적이다. 비밀증서나 자필증서에 의한 방식도 유언자 스스로 작성하는 장점이 있어 애용되지만 자필증서 방식을 제외한 나머지 4가지 방식에는 반드시 증인의 참여가 필요하다.
유언을 남기지 않거나 남겼더라도 요건미비로 무효가 되면 법에 정해진 대로 상속이 진행된다. 예컨대 유족으로 배우자와 아들 딸이 있는 경우 이들은 각각 1.5 대 1 대 1의 비율로 재산을 물려받는다. 민법 개정으로 이르면 내년부터는 배우자가 상속재산의 50%를 갖게 된다.
그러나 법에 정해진 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상속하고 사후 유족 간 재산다툼을 예방하기 위해선 철저한 사전계획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재무설계 전문인 박선희 변호사는 "상속인 이외에 신세진 사람 또는 혼외자식,사실혼의 배우자,재혼한 배우자의 자녀 등에게 재산을 물려주거나 공익을 위해 기부하려면 유언이 최소한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병일·김동욱 기자 kbi@hankyung.com
지갑이 두툼해진 노년층이 늘고 있지만 유언을 통해 재산을 배우자나 자녀에게 물려주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13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유언 관련 소송은 2002년 109건,2003년 140건,2004년 118건 등으로 100건을 겨우 웃돈다. 연간 2만건이 넘는 상속 관련 소송과는 비교가 안된다. 유언문화가 아직 정착이 되지 않아 사건이 많지 않은 게 그 이유이다.
금융권에서 유언신탁이나 특정금전신탁 등 유언 관련 상품이 출시된 지도 벌써 6년이 넘었지만 취급실적은 바닥 수준이다. 신한은행 서울파이낸스 PB센터 이정우 팀장은 "재무상담을 해오는 사람들에게 유언장 작성을 권유하지만 실제 유언장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유언문화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데는 가부장적인 권위문화와 함께 까다로운 법적 요건 때문이다. 정모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씨는 후처에게 전재산을 물려주기로 했으나 잘못된 유언으로 인해 한을 안은 채 세상을 떴다. 지난 3월 대법원은 정씨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병이 깊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후처가 미리 작성한 쪽지내용을 변호사가 읽어주고 정씨에게서 '음''어'하는 정도의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것은 민법 제1070조 '구수증서(유언자의 말을 정리해 문서로 남긴 것)에 의한 유언'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이처럼 유언은 법에 정한 엄격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요식행위다. 법원은 민법에 정해진 요건에 조그만 흠결이라도 있으면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민법에는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등 5가지의 유언방식이 규정돼 있다. 이 중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이 가장 일반적이다. 비밀증서나 자필증서에 의한 방식도 유언자 스스로 작성하는 장점이 있어 애용되지만 자필증서 방식을 제외한 나머지 4가지 방식에는 반드시 증인의 참여가 필요하다.
유언을 남기지 않거나 남겼더라도 요건미비로 무효가 되면 법에 정해진 대로 상속이 진행된다. 예컨대 유족으로 배우자와 아들 딸이 있는 경우 이들은 각각 1.5 대 1 대 1의 비율로 재산을 물려받는다. 민법 개정으로 이르면 내년부터는 배우자가 상속재산의 50%를 갖게 된다.
그러나 법에 정해진 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상속하고 사후 유족 간 재산다툼을 예방하기 위해선 철저한 사전계획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재무설계 전문인 박선희 변호사는 "상속인 이외에 신세진 사람 또는 혼외자식,사실혼의 배우자,재혼한 배우자의 자녀 등에게 재산을 물려주거나 공익을 위해 기부하려면 유언이 최소한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병일·김동욱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