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얼마일까.

와인만 맛있으면 그만이지 굳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알코올 도수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점점 더 독한 와인이 나오면서 알코올 도수 최고 기록이 수시로 깨지는 상황이다.

'California Grape Crush Report'에 따르면 와인의 평균 알코올 도수는 1971년 약 12.5%였다가 2001년에는 14.8%까지 높아졌다.

30년 만에 2.3% 증가한 것이다.

20여년 전만 해도 알코올 도수 15% 이상은 주정 강화 와인으로 인식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변화다.

그 당시 보르도 지역 레드 와인은 대체로 11~12% 정도였다.

요즘에는 대부분이 13%대다.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 지역의 카베르네 품종 와인도 13%에서 15%로 변했다.

알코올 도수가 높아진 원인은 지구 온난화 현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도가 높은 온도에서 자라면 포도의 산이 감소하고 당도는 증가한다.

높아진 포도의 당도가 알코올 농도를 진하게 만드는 것이다.

빈티지에 따라 알코올 도수가 조금씩 달라지는 현상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지구 온난화는 독일과 같은 지역에서는 포도 품종의 변화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포도를 더 이상 재배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와인이 독해지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와인 전문가들에 의해서다.

로버트 파커와 스펙테이터 잡지는 세계 와인 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수많은 와인 소비자들이 이들의 와인 평가에 의지해 와인을 고른다.

그런데 최근 파커와 스펙테이터는 색깔이 진하고 알코올 함량이 많은 와인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게다가 국제적인 와인 대회에서도 알코올이 많이 함유된 와인이 메달을 독차지하고 있는 추세다.

와인 메이커들은 이들 전문가 집단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는 상승 일로에 있다.

소수의 와인 권위자에 의해서 와인 스타일이 변하고 와인 산업이 영향받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소비자들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에 길들여진 것도 연유가 됐다.

독한 와인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소비가 늘어나게 된 셈이다.

과거에 알코올 농도가 진한 와인은 햇볕이 좋은 캘리포니아 등 신대륙 지역에 국한된 현상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제는 구대륙의 보르도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도 알코올 레벨이 높아지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기계마저 도입하는 실정이다.

이쯤에서 와인만 맛있으면 그만이지 굳이 알코올 도수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알코올 도수의 상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 줘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아이덴티티의 상실이다.

와인이 몰개성화돼 가고 있다는 뜻이다.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수확을 늦게 하면 포도의 신선한 향이 사라져 자칫 개성과 특성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지루한 와인을 즐겨야 한다는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소믈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