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매체와 잊혀져 가는 사람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울림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신작 '라디오스타'에 대한 이준익 감독의 소감이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한물 간' 가수와 매니저가 시골 방송국에서 재기를 모색하는 과정을 눈물겹게 그려낸다.

'왕의 남자'에서 빛났던 연출솜씨가 한결 더 무르익었다.

그는 안성기와 박중훈을 앞세워 관객들을 마음껏 웃기고 울린다.

30대 이상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수준 높은 유머도 곁들였다.

1988년 가수왕 최곤(박중훈)은 각종 스캔들로 인해 내리막길을 걷다가 우연히 지방 방송국 라디오프로 DJ를 맡게 된다.

커피 배달을 온 다방 여종업원이 즉석 게스트로 등장해 청취자들의 눈물을 이끌어내면서 그는 인기 프로의 DJ로 부활한다.

그러나 그는 성공을 위해 오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와 결별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영화는 미래(성공)를 위해 과거(매니저)와 단절하거나,인정에 매달려 효율을 접어두는 인생사의 과제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속도와 경쟁시대가 요구하는 답변과는 정반대의 해법을 제시한다.

삶의 진정한 행복은 사회적 성취로만 이룩되지 않는다는,평범하지만 잊고 사는 진실을 일깨워준다.

최곤과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박민수의 관계는 할리우드 영화 '선셋대로'의 글로리아 스원슨과 에릭 폰 스트로하임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들은 모두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우리 자신의 거울이기도 하다.

카메라는 한물 갔지만 여전히 가치 있는 소품과 상징들을 적절히 제시해 주제에 부응하고 있다.

안성기와 박중훈은 1980~1990년대의 전성기처럼 극 중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구식 벤츠는 고장 없이 잘 달린다.

TV에 밀려났던 라디오 방송국과 먼지 덮인 방송실도 다시 햇살을 받는다.

신중현의 '미인'과 조용필의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등 흘러간 노래들도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데만 몰두해온 한국 영화가 모처럼 잊혀져가는 것들을 되살펴 보는 기회를 살려냈다.

28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