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萬洙 <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

미국과의 전시 작전통제권에 관한 논의를 보며 우리가 좀더 긴 안목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안위가 달린 사안은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고 국민의 충분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일본과는 독도와 과거사 문제로,중국과는 동북공정(東北工程) 문제로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와는 외교관계 수립의 조건이었던 30억달러 경제협력차관 문제로 시작부터 불편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4대 강국과의 외교관계가 모두 원활하지 못하다.

우리는 러시아에 대해 15억8000만달러(원리금 합계는 22억4000만달러였으나 탕감되었음)의 채권을 갖고 있다.

이 채권은 1990년 9월에 수립된 소련과의 외교관계 후속조치로 다음해 1월 현금차관 10억달러,소비재차관 15억달러,자본재연불수출 5억달러 등 총 30억달러의 경제협력차관을 공여하기로 약속하고 14억7000만달러까지 집행되다가 소련이 해체됨으로써 중단되었다.

소련의 대외채무를 승계한 러시아는 당초 약속대로 30억달러의 차관제공을 요청했다.

그 대가로 첨단기술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제공하겠다고 했으나 상환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차관제공은 중지됐고, 강대국인 러시아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다.

포항제철에 미사일 하나만 떨어져도 50억달러가 날아가는데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제공을 중단한 대가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리마저 들렸다.

당시 대소(對蘇) 경협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재무부는 30억달러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외무부 등 관련부처의 대세는 차관제공 중지였다.

우리가 어려웠을 때를 생각하면 러시아 외교는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한말 고종황제가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외교친서에는 일본과 전쟁이 일어나면 러시아편에 서겠다는 것,한성(漢城)에 있는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러시아군을 보내달라는 것,그리고 이상설 등 3인의 밀사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의 불법침략을 호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절박한 내용이 담겨있다.

일본식민지시대에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무장투쟁을 하던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에 대해 러시아의 레닌 정부는 상당한 재정지원을 한 적도 있었다.

러시아는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일환이었지만 공적인 정부예산으로 독립투쟁자금을 지원한 유일한 나라였다.

러시아 대외경제은행은 지난달 유럽 18개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에 지고 있던 장기국가부채 237억달러를 모두 갚았다고 발표했다.

1998년 대외채무지불유예(모라토리엄) 선언 당시 빚이 1600억달러나 되던 러시아가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힘은 고유가로 벌어들인 오일달러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원유를 수출해 847억달러를 벌어들였고 석유 제품을 포함한 수출액은 1180억달러로 수출액의 절반에 육박한다.

외환보유액은 올해 2500억달러를 넘어 중국 일본 대만 다음으로 많아져 지금은 순채권국가로 바뀌었다.

러시아는 2008년까지 1000억달러의 장기채무를 갚겠다고 했다.

비록 공산당 계열이었지만 우리 독립군에게 자금을 지원한 나라가 러시아다.

우리들은 상환능력이 없다고 그네들에 약속한 30억달러를 이행하지 않았다.

30억달러는 공짜도 아니고 빌려주는 것인데 러시아가 어려울 때 도와주면 좋은 우방도 되고 장기적으로 시베리아개발과 북태평양 어업협상에서도 충분히 실리(實利)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결정이 단견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세계 4강에 둘러싸인 나라가 우리말고 누가 있는가.

과거 우리는 시대를 읽지 못한 쇄국(鎖國)외교로 나라도 잃어보았다.

냉전이 태동되면서 전국이 초토화된 전쟁도 경험했다.

외교의 실패는 상대국이 있기 때문에 국내정책 실패와 같이 쉽게 고치거나 만회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중을 요한다.

러시아와의 30억달러 경제협력차관도 약속대로 이루어졌다면 지금 채권회수와 함께 원유공급이나 시베리아개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미국과의 작전통제권 문제도 자주라는 이름으로 장기적인 국가이익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