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 < 소설가 >

며칠 전 나는 텔레비전에서 안타까운 보도 하나를 접했다.

열일곱살 소녀 가장이 자신을 도와 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네티즌들에게 보냈는데 그 내용이 가짜라는 것이었다. 편지를 띄운 이는 십대 소녀가 아니라 스물다섯살의 건장한 남자였고,뺑소니 사고를 당해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내용 역시 가짜였다. 그 편지를 접한 네티즌들은 많게는 백만원에서 적게는 몇 만원까지 송금(送金)하며 격려의 말까지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 보도를 접한 나는 한편으로는 마음이 따뜻했고,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서늘했다. 스물다섯살 혈기왕성한 사람이 땀 흘려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살려하다니.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용기를 가져달라며 돈을 송금해준 네티즌들 때문에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고,거짓 편지를 띄운 남자에게 미운 마음이 생겼다.

나를 실의에 빠트린 사건은 또 있었다. 이십대 어머니가 자신의 불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네살배기 아들을 차로 치고도 그대로 방치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짐승도 자신의 새끼는 목숨 걸고 보호하는데,하물며 사람이,어머니가,자신의 자식을 절명의 길로 인도하다니. 그 내용을 접한 나는 분노까지 치밀었다.

일련의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들에게 얼마만큼 나를 내보이며 살아가야 하는지. 얼마만큼 타인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얼마만큼 사람을 믿어야 하는지. 너무 많이 퍼주어도 바보가 되기 십상일 테고,너무 되게 굴면 야박한 사람이 될 테고,사회 역시 그만큼 비정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때그때 계량(計量)해서 주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이기심과 이타심의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혼자 살았다. 혼자만의 아파트. 혼자만의 식탁. 혼자만의 생활. 처음엔 그 호젓함이 마냥 편안하고,행복하고,여유로웠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유 없이 몸 여기저기가 아파왔고,우울증까지 생겼다. 나는 견디다 못해 짐 싸들고 슬그머니 가족들에게로 돌아왔다. 인간은 제 아무리 잘 나도 혼자 살 수 없는 법.

인간은 타인과 섞여 살아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타인으로 인해 적당히 불편함을 겪고,적당히 구속을 당하며 살아야 육체와 정신,모두 다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은,타인의 그림자는,곧 자신과 그리고 자신의 그림자와 공집합 관계인 것이다.

추석이 낼 모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이만큼만 하라고 했다. 하늘의 달은 만월이요,땅은 오곡백과가 풍성하게 열렸으니 하는 소리일 텐데,나는 요즘 돌아가는 시류와 사람들의 인심을 보면서 그 말을 절절하게 떠올린다.

그렇다. 가슴 서늘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접하면서도 나는 앞으로도 꼭 이만큼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곳곳에서 감시카메라가 돌아가고,한쪽에서는 부지런히 복제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이 복제와 감시의 시대에서 인간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아예 탈인간을 선언할지 모른다. 인간의 본성인 측은지심(惻隱之心)과 모성(母性)을 내던져버리고 사람들은 오로지 이윤과 쾌락만을 향해 쫓아갈는지 모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정말 앞으로도 꼭 이만큼만 했으면 좋겠다. 아직 가짜 편지에 속아 돈을 송금하고,이십대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내버려도 꼭 이만큼만 했으면 좋겠다.

그래. 아직도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코끝 찡하게 만들어주는 일들이 여전히 많지 않은가.

지하철에 떨어진 승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던지는 사람도 있고,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장기 일부를 떼어주는 사람도 있으며,홀로 사는 노인들을 제 부모처럼 보살피는 이들도 있다. 수해가 닥치면 기꺼이 팔 걷어붙이고 돕고,익명으로 얼마간의 성금도 내놓는다.

꼭 이만큼만 했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꼭 이만큼만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