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방송·통신(방·통)융합 서비스 시장 개방을 강력히 요구해와 비상이 걸렸다.

'차세대 미디어'로 각광받고 있는 산업이지만 방송 및 통신업계는 물론 관련 정부 부처까지 두 갈래로 갈려 지난 2년간 '밥그릇 싸움'에 열중한 탓에 아직도 제대로 된 규제 체계조차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통부와 방송위의 대리전

2003년부터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방·통융합서비스에 대한 법제화를 논의했지만 논의는 공회전을 거듭해왔다.

방·통융합의 대표적 서비스인 인터넷TV(IPTV)를 통신기술 발전에 따른 부가서비스로 봐야 한다는 정통부의 입장과 방송으로서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방송위의 이견이 팽팽히 맞서 해소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통부 주장은 통신업계의 주장이고,방송위의 주장은 지상파 3사의 주장이다.

지난 7월에야 방송위 정통부 문화관광부가 참여하는 방송통신융합 추진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조기 의견조율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2년째 논란이 이어지면서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던 방·통융합 산업은 다른 산업에 밀려 뒷걸음질하고 있다.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IPTV 분야 등에 투자해온 통신업체들은 법제화를 기다리느라 지쳐버렸다.

KT는 IPTV에 1조원가량 퍼부어 준비를 마쳤으나 상용서비스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다.

한국이 초고속인터넷 인프라 등이 뛰어난 만큼 가장 먼저 IPTV를 상용화할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미 "밥그릇 싸움 이해하라니…"

TV수상기를 인터넷망에 연결해 실시간 방송과 각종 인터넷서비스를 즐기는 IPTV는 방·통융합의 꽃이다.

IPTV 시장이 열리면 통신업체와 콘텐츠 제작업체 등이 다양한 상품을 내놓을 수 있고 관련 산업이 새로 생겨날 수 있다.

정통부는 이런 점을 들어 방·통융합 서비스시장 개방에 반대하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한국의 방·통융합서비스는 태동 단계일 뿐 법이나 제도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며 "따라서 방·통융합서비스 항목을 비개방 유보안에 넣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방에 반대하기는 방송위도 마찬가지다.

방송위 관계자는 "FTA와 관련해 방송으로 분류될 경우 유보가 가능하지만 만일 새로운 제3의 부가서비스가 되면 이미 세계무역기구(WTO)에 양해가 돼 있어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측 협상단은 이 같은 논리를 토대로 방·통융합서비스를 '개방 제외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 관할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개방할 수 없다"는 논리가 협상에서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논쟁이 국내 사정일 뿐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이 같은 강경 자세는 자국내에서 이미 방·통융합 기반을 다지고 공세를 취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미국은 10년 전인 1996년 통신법을 제정해 통신과 방송사업자가 각각 상대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길을 터줬다.

케이블TV와 초고속인터넷,시내전화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트리플 서비스가 좋은 예다.


○"개방보다 무서운 건 규제"

더 큰 문제는 방·통융합서비스를 방송으로 분류할 경우 더 이상의 방·통융합산업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방·통융합서비스를 방송으로 분류해도 개방을 피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며 "만약 방송으로 분류해 FTA 협상에서 개방을 피할 수 있더라도 그 경우 IT산업 미래 상실이란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양대 박소라 교수는 "방·통융합서비스를 방송으로 분류할 경우 기존의 규제가 많아 발전이 어렵다"면서 "소비자 혜택을 제고하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면 굳이 이중삼중 규제를 행하기보다 시장에 맡기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고기완·김현석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