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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투데이] 위험한 '태국식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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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지난주 화요일 밤 태국 방콕의 에라완 사원 앞에는 젊은 군인들이 막중한 임무를 띤 채 숨죽인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들의 무기에는 푸미폰 태국 국왕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는 노란색 리본이 매달려 있었고 그들은 그 중요 지점을 사수하고 있었다.

    이에 수시간 앞서 국왕의 오른팔인 프렘 틴술라논 추밀원장에 의해 주재된 회담은 탁신 총리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과 탁신의 추방을 원하는 세력들의 분열로 깨졌다.

    탁신 총리는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머물고 있는 동안 이번 쿠데타를 맞았으며 그는 즉각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손티 분야랏글린 총사령관이 이끄는 쿠데타 세력은 별 저항없이 정부 청사를 점령했다.

    어떻게 이렇게 태국의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었을까.

    탁신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탁신의 부패와 선거위원회 같은 독립 정치기구의 탁신 편들기에 대해 불만이 쌓여 왔다.

    탁신은 57%의 득표율을 얻은 지난 4월 선거에서 승리하며 맞섰지만 탁신의 반대 세력은 선거 결과를 거부했다.

    올 7월 말께만 해도 전문가들은 태국 정국이 쿠데타로 악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거의 전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출라롱콘대학 부설 아시아연구소의 우크리스트 팟마난드는 예외였다.

    그는 탁신과 타이락타이당에 의해 야기된 사회 분열이 군부 내에서도 자연스럽게 불거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매우 특별한 상황"이라며 대규모 시위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1991~1992년 태국 군부 정권에서 총리를 역임한 아난드 파냐라춘 전 태국 총리는 이번 사건에 대해 "2보 전진과 함께 1보 후퇴한 사건"이라며 "모든 나라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따라할 필요는 없으며 태국만의 민주주의가 토착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태국 방식의 민주주의란 아이디어가 많은 태국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그것은 태국 내에서 주요 정치적 분열이 있을 때마다 조정자 역할을 했던 국왕의 권력에 기대고 있다.

    프렘 추밀원장은 "이것은 태국을 위해 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이라며 "우리는 왕이 없는 공화국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며 매우 특별하고 훌륭한 왕이 있는 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탁신을 제거한 이번 사태와 같은 태국식 해결은 위험하다.

    우크리스트가 말했듯 태국 사회는 도시 엘리트와 농촌 빈민들로 나뉘어져 있고 점점 불만이 높아지는 중산층과 빈약한 제도와 부패로 물든 정치 시스템 사이에서 분열되고 있다.

    태국은 고통스럽겠지만 이러한 정치적 소동과 싸워가며 정국이 나아질 수도 있다.

    쿠데타 그 자체는 태국 정치 안정성에 해를 끼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태국 사회의 깊은 분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군사 정권이 1년 내 자유 선거를 실시한다 해도 이 같은 사회 분열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이번에 실패한다면 다음은 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리=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이 글은 홍콩의 시사 주간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EER)의 부편집장인 컬럼 머피(Colum Murphy)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For King and Country?'란 제목의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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