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성장의 적, 진입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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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적인 모델을 사용해 뭔가를 보여주려는 경제학자들이 흔히 듣는 핀잔이 있다.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을 구태여 그렇게 어렵게 증명하느라 애쓰느냐는 것이다. 규제와 관련한 각종 가설들은 그 좋은 사례다. '진입을 규제하면 진입률이 떨어진다.''진입이 이루어지면 고용과 생산성이 올라간다.' 생각하면 당연한 주장같다. 그래도 막상 계량적으로 증명이 되고 나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리는 효과가 있다. 그 맛에 계량경제학자들이 사는지도 모르겠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기업환경 개선을 위한 규제개혁 연구'라는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진입규제, 그 중에서도 강한 규제(정부독점, 지정, 허가, 면허, 인가, 승인 등)가 신규 사업체들의 해당 산업 진입을 억제했고, 그 결과 산업의 성장도 저해됐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자료를 활용, 42개국의 법규제지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보니 상관관계가 존재하더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42개국 평균수준으로만 법과 규제가 정비돼도 연평균 약 0.5%포인트 정도의 추가성장이 가능했을 것이란 추정도 내놓고 있다. 쉽게 말하면 기존의 진입규제를 절반만 줄여도 잠재성장률을 그 정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한국경제에서 0.5%포인트 추가성장이 갖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수많은 진입규제들이 널려 있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건 소위 '칸막이식' 규제다. 금융이나 방송·통신 분야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최근 금융분야에서 칸막이식 규제를 허물어뜨리는 '자본시장통합법'이 등장한 것은 큰 진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통신과 방송의 경우는 영역다툼으로 인해 그런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한·미 FTA 협상에서 통방 융합서비스에 대해 '미래 유보'라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미국이 개방을 요구하더라도 아예 개방에 대한 논의조차 안하겠다는 의미다. IT강국을 자부하는 나라에서 졸지에 통방 융합서비스가 시간을 벌어 보호하지 않으면 안되는 '유치(幼稚)산업'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방 융합 얘기는 달라진 게 없다.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통방 융합의 상징처럼 돼버린 IPTV(인터넷TV) 시범사업이 시작은 되는 모양이지만 앞으로 상용화, 법제화 문제 등 또 얼마나 우여곡절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도 벌써부터 싹수가 노란 것 같다. 융합서비스보다 통합기구 문제부터 먼저 논의해 관련 법률을 국회에 내겠다고 한다. 법·규제 우선주의가 따로 없다. 그렇게 보내고 있는 세월만 10년이 다 돼가고 있다.
조금만 전향적으로 돌아섰더라면, 애매하고 잘 모르겠으면 차라리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선(先)방임 후(後)규제'로만 갔어도, 통방 융합서비스는 세계최고가 될 수 있었던 분야다. 밖에서도 진입(개방)이 안되고, 안에서도 진입이 안되는 상황이 더 이어지면 결과가 어찌 될지는 자명하다. IMD나 WEF(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의 경쟁력이 밀리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기술잠재력은 있지만 법·제도가 문제라는 지적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한국개발연구원(KDI)의'기업환경 개선을 위한 규제개혁 연구'라는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진입규제, 그 중에서도 강한 규제(정부독점, 지정, 허가, 면허, 인가, 승인 등)가 신규 사업체들의 해당 산업 진입을 억제했고, 그 결과 산업의 성장도 저해됐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자료를 활용, 42개국의 법규제지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보니 상관관계가 존재하더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42개국 평균수준으로만 법과 규제가 정비돼도 연평균 약 0.5%포인트 정도의 추가성장이 가능했을 것이란 추정도 내놓고 있다. 쉽게 말하면 기존의 진입규제를 절반만 줄여도 잠재성장률을 그 정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한국경제에서 0.5%포인트 추가성장이 갖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수많은 진입규제들이 널려 있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건 소위 '칸막이식' 규제다. 금융이나 방송·통신 분야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최근 금융분야에서 칸막이식 규제를 허물어뜨리는 '자본시장통합법'이 등장한 것은 큰 진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통신과 방송의 경우는 영역다툼으로 인해 그런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한·미 FTA 협상에서 통방 융합서비스에 대해 '미래 유보'라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미국이 개방을 요구하더라도 아예 개방에 대한 논의조차 안하겠다는 의미다. IT강국을 자부하는 나라에서 졸지에 통방 융합서비스가 시간을 벌어 보호하지 않으면 안되는 '유치(幼稚)산업'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방 융합 얘기는 달라진 게 없다.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통방 융합의 상징처럼 돼버린 IPTV(인터넷TV) 시범사업이 시작은 되는 모양이지만 앞으로 상용화, 법제화 문제 등 또 얼마나 우여곡절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도 벌써부터 싹수가 노란 것 같다. 융합서비스보다 통합기구 문제부터 먼저 논의해 관련 법률을 국회에 내겠다고 한다. 법·규제 우선주의가 따로 없다. 그렇게 보내고 있는 세월만 10년이 다 돼가고 있다.
조금만 전향적으로 돌아섰더라면, 애매하고 잘 모르겠으면 차라리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선(先)방임 후(後)규제'로만 갔어도, 통방 융합서비스는 세계최고가 될 수 있었던 분야다. 밖에서도 진입(개방)이 안되고, 안에서도 진입이 안되는 상황이 더 이어지면 결과가 어찌 될지는 자명하다. IMD나 WEF(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의 경쟁력이 밀리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기술잠재력은 있지만 법·제도가 문제라는 지적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