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음덕을 새기는 추석을 앞두고,자신의 뿌리를 찾아 마음의 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떨까. 우리가 생각하는 '핏줄'은 어디까지이며,조상은 어디에서 온 분인가를 화두(話頭)로 잡는 궁구(窮究)의 여행 말이다.

얼마 전 책을 뒤적거리다 한반도의 인구가 지금의 절반도 안 됐던 15세기에 한국인의 성씨(姓氏)와 본관(本貫) 수가 지금보다 오히려 더 많았다는 내용의 논문을 접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성씨는 250여개,본관은 4500여개였다. 그런데 정부의 2002년 말 인구 총 조사 결과 성씨는 여전히 250여개인 반면 본관은 1100여개로 줄어 있더라는 것이다.

인구 증가에 따라 성씨·본관의 수가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4분의 1로 줄어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조선조 말기 들어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상놈'이나 '천민'의 낙인이 찍힌 성씨를 갖고 있던 양민들이 슬그머니 '양반'의 성씨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김새게' 자신의 가문이 '짝퉁 성씨'는 아닌지 따져 보자는 건 아니다. '혈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덧없는 일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화두를 꺼낸 김에 더 따져 보자. 우리는 과연 순혈(純血)한 단일 민족인가. 문화관광부 분석에 따르면 250여개 국내 성씨 가운데 130여개는 시조(始祖)가 중국과 일본 몽골 베트남,인도와 아랍 이란 등지에서 건너온 귀화 성씨다.

대통령과 최장수 국무총리를 배출한 김해 김씨와 허씨는 가야국 시절 인도 아유타국에서 '이민' 온 허황옥(許黃玉) 공주가 시모(始母)다.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노(盧)씨는 중국인 단일 시조를 모시고 있다. 한국과 중국,베트남 등 10여개 국가의 노씨들이 '세계 노씨 종친회'를 만들어 혈육의 정을 나누고 있다.

거꾸로 한국인이 외국에 '씨앗'을 뿌린 사례도 많다. 임진왜란 와중에 일본군에 노예로 끌려갔다가 이탈리아로까지 흘러들어가 '코레아(Corea)' 가문을 일으킨 안토니오 코레아도 있고,일본의 새 총리 아베 신조씨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은 조상이 10세기께 발해에서 건너간 한국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오랜 역사의 흐름과 세월의 풍화 속에 피가 섞이고,문화까지도 녹아 있는 게 '민족'과 '가문'의 실체다.

그 '피 섞임'의 역사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TV의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스리랑카계 노동자를 가장한 '블랑카' 코너가 큰 인기를 모았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한 축을 이주 노동자들이 받쳐주고 있다. 결혼 이주자까지 합치면 최소한 50만명의 외국인 이민자들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이들이 적지 않은 '기존' 한국인들로부터 거리감을 둔 대접을 받고 있지만 오래 전 김해 김씨와 허씨,노씨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의 후예가 한국인의 또 다른 구성원이 돼 있을 게 분명하다.

이번 추석을 그런 '열린 생각'의 출발점으로 삼아 편 가름의 고질을 벗어 던지고,모두를 품어 안는 '글로벌 코리아'의 열린 기상(氣像)을 기를 수 있다면 좋겠다.

이학영 생활경제부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