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새 일본 정부의 엔화 약세 기조 선호 정책이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경기 전망을 나타내는 9월 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단칸) 지수가 2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엔화는 약세를 이어갔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중반 인위적으로 엔 강세를 유도한 것과 같은 새로운 플라자체제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일면서 원화 강세 압력으로도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엔화 가치 왜 떨어지나


9월 단칸 지수가 24로 6월 말보다 3포인트 오르면서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엔화는 달러당 118.33엔으로 지난 주말보다 0.23엔 상승(엔화가치 하락)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아베 총리가 경제 성장을 위해 저금리 정책과 엔화 약세 기조를 선호,단기적으론 엔화 약세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값싼 일본 자금을 빌려 다른 나라의 수익성 높은 곳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재개된 것도 엔화 약세의 요인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엔화 공급 확대로 엔화가치를 떨어뜨린다.

단칸 지수가 좋아져 시장에선 내년 3월까지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아마리 아키라 경제산업상은 "일본경제가 디플레에서 탈출했는지를 보다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며 신 정부의 금리 인상에 대한 거부감을 표명했다.



◆어떤 부작용이 있나

엔화 약세로 엔화의 국제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

이류(二流)통화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엔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때 10%를 넘었지만 지난 3월 말에는 3.4%로 급락해 4%를 차지한 영국 파운드화에 뒤처졌다.

국제금융시장에서 1선 통화(first facility)라면 세계 외환보유액 보유비중이 3위까지인 통화를 말한다.

지난 3월 말 현재 미국 달러비중은 66.3%에 이르고 2위와 3위는 각각 24.8%와 4%를 차지한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다.

엔 캐리 자금의 이탈에 따른 자본수지 악화로 일본이 1980년대 후반 이후 누려온 세계 최대의 채권국 위상이 흔들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춘호 홍콩 심플렉스 한국 대표는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채권국으로서 일본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며 "앞으로 더 악화되면 미국의 국채투자 회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미국과 유럽 각국은 엔화 가치 회복을 위해 본격적인 압력을 가할 태세다.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수년간 달러화 약세가 지속됐지만 엔화 가치는 달러화보다 더 떨어졌다"며 선진국들 사이에서 엔화 약세에 대한 인내가 한계에 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다시 엔화 강세를 유도하는 신플라자 협정 얘기가 거론돼 엔 약세 기조를 고수할 일본정부와 마찰이 예상된다.

한상춘 논설·전문위원,도쿄=최인한 특파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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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풀이 ]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

저금리 국가의 통화를 빌려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것.국제금융시장에서 수년간 사실상 0%였던 일본 엔화를 빌려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엔 캐리 트레이드란 말이 가장 많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