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 뉴욕양키스의 19승 투수인 왕치엔밍은 대만의 '국민스타'다.

일시적인 부진으로 마이너리그 강등이 예상되던 지난 4월엔 대만 집권 민진당의 여성 국회의원인 샤오메친이 빅리그 잔류를 염원하는 국민 캠페인을 벌였을 정도다.

오죽하면 "지금 대만 총통 선거에 나오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까.

하지만 이 같은 왕치엔밍의 인기는 대만이 '야구의 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감이 있다는 게 대만 국민 스스로의 생각이다.

타이베이의 한 스포츠매장 판매점에서 만난 우치아싱씨는 "왕치엔밍의 인기는 암울한 정국불안에 따른 기형적인 현상"이라며 "한국도 외환위기 직후에 미국 LPGA의 박세리 선수가 국민의 희망으로 떠올랐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정치에 발목이 잡힌 대만의 경제는 우리의 외환위기 직후만큼이나 암울하다.

천수이볜 총통의 포퓰리즘에서 비롯된 정치적 혼란은 올 들어 주변 친인척들의 비리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천 총통은 대만이 중국 본토의 도움 없이 독자적 경제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대만 독립을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양안 관계'를 정권 유지에 활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대만 경제의 위기는 각종 데이터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천 총통이 취임한 2000년 이후 대만의 각종 경제지표는 지속적으로 '빨간불'이다.

집권 6년 만에 대만의 대외부채는 460% 급증했다.

2000년 5.7%였던 경제성장률은 다음해 -2.2%로 곤두박질쳤다가 지난해 가까스로 4% 수준에 올라섰다.

실업률은 6년 전 2.9%에서 4.1%로 치솟았다.

성장 부진은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도 대만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2개 신흥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4.0%로 잡았다.

국가경쟁력 순위도 큰 폭 하락했다.

카오쉬엔퀘이 대만 행정원 경제건설위원회 종합기획처 부처장은 "지금과 같은 정치불안이 지속된다면 대만의 국가경쟁력은 한없이 추락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소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대만경제의 특성도 경제 부진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만 한국대표부 강명수 경제조장은 "글로벌 전자업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대만은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자체 브랜드로 세계시장 공략에 성공하고 있는 한국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며 "'굳이 일류를 지향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강했던 대만 경제계가 최근 저성장이라는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서둘러 글로벌 브랜드를 육성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경제당국은 이에 따라 2008년을 목표로 '새로운 세기의 제2기 국가개발 플랜'을 가동하는 등 경제살리기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총통,중앙은행 총재,경제 장관 등으로 구성된 행정원 경제건설위원회는 2기 국가개발 플랜에서 2015년까지 대만이 지향할 목표로 '최첨단 산업으로 무장한 깨끗한 환경의 섬'을 뜻하는 'Green Silicon Island'로 정하고 작년 말 기준으로 1만5000달러 수준인 1인당 명목 GDP를 2015년까지 2만7000달러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같은 비전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상당수 전문가들이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벗어나는 것만큼이나 '정치의 벽'을 넘어서는 일이 간단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타이베이=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