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섹스 앤드 더 시티(Sex and the City)'라는 미국 TV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모았다.

30대 중반의 전문직을 가진 4명의 여자가 삶과 사랑,자유에 대해 나누는 대화가 거침이 없다.

이들 중 주인공인 캐리가 "자유롭게 연애하면서 미용과 패션에 결코 뒤지지 않겠다"며 다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드라마가 방영된 후 젊은 여성들은 물론 남성들 사이에서도 '캐리'를 닮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캐리의 생각은 이제 나이의 구분이 없다.

60대 이상의 실버세대에서도 이성교제가 자유로워지고 있는가 하면 외모가꾸기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잘 생기셨다'는 말보다는 '동안(童顔)이시네요'하는 말을 더 큰 칭찬으로 여긴다.

연애와 몸매가 청춘남녀들의 전유물인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어제 '노인의 날'을 맞아 실시한 한 설문조사가 이를 증명하는 듯하다.

노인 4명 중 1명은 이성교제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용돈의 40% 이상을 피부관리와 이·미용 등 뷰티 관련 비용에 지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경향은 외모를 중시하는 '루키즘'과도 연관이 깊다.

종전에는 루키즘이 오로지 결혼이나 출세의 수단이라 해서 비난을 받았지만,지금은 '외모가 곧 비즈니스'라 하듯 자신의 얼굴과 몸매를 가꾸지 못하는 것을 게으름으로 치부하는 세태가 됐다.

루키즘을 받아들이는 세대의 폭이 넓어지면서 '가꾸지 않는 것은 죄'라는 시대코드 속에 어르신들도 동참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실버세대는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경제력 역시 커지고 있다.

개인적인 욕망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연애감정이 솟아나고 혹여 자신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지 않나 챙겨보게 되는 것 같다.

나이 든 어른들이 닭살스런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고 황혼결혼을 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형식적인 권위와 체면을 뒤로 하고 립스틱 다시 바르는 노인들 '파이팅'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