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궁동 주택가의 28평짜리 작은 빵집.이른 아침부터 소보로 카스테라 크림빵 등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인근 서서울생활과학고등학교 조리학과 학생들이 교내 실습실에서 만들어 막 배달한 것.교직원과 학생들이 만든 '학교기업'이 지난 12월 문을 연 매장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선호현상이 뚜렷하지만 최근 들어 고교 시절부터 자신의 진출 분야를 정해 전문성을 키우는 실업계 학생들도 크게 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선 교육과정에 기업경영활동을 접목한 '학교기업'을 설립,학생들이 일찍부터 비즈니스 노하우를 익히도록 하고 있다.

서서울생활과학고는 대표적인 케이스.지난해 구로구청에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을 내고 12월께 교내·외 매장을 개설했다.

황정숙 교장이 회사의 대표이고 교사와 2,3학년 재학생들이 기획·판매·회계·홍보를 담당한다.

서울시 교육청이 지원한 1억2000만원과 교비 3000만원을 자본금으로 세워졌다.

원래 조리과학과 3학년생들은 일주일에 4시간씩 제과제빵 실습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고급 기술을 익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 학교측은 아예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현재 7명의 직원들은 아침 수업 전과 점심시간,방과 후를 이용해 100여 종류의 케이크와 빵류를 생산한다.

좋은 재료로 만들어 시중보다 20~30% 싸게 파는 덕에 벌써부터 입소문이 나 월 1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핵심 직원인 송지연 학생(18·조리과학 3년)은 이미 한국관광대학 제과제빵학과에 특별전형으로 붙은 상태다.

그는 "제과제빵은 한번이라도 빵을 더 만들어 본 경험이 중요하다"며 "남들보다 3년이나 먼저 실무 감각을 익히니까 졸업생 선배들도 '대학에 진학해 보니 조교 수준으로 앞서 가더라'고 하더라"고 말한다.

중학교 시절 성적이 중상위권이라 인문계 고교 진학도 가능했던 송양은 일찍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업계 학교를 선택했다.

1,2학년 때 한식·일식·중식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조리사 자격증을 무려 3개나 땄다.

송양은 "대학을 마친 후에는 국내에서 맛보기 힘든 희귀한 케이크들을 판매하는 케이크전문점의 CEO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국 지도교사는 "지난 겨울방학에 열심히 근무한 아이들의 경우 자격증 여부에 따라 월 80만~90만원의 월급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학교기업은 서울에 13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35곳에 이른다.

'용공모터스'라는 간판을 내걸고 승용차 경정비 회사를 운영하는 용산공고에는 자동차정비기능 자격증 등을 가진 자동차과 학생 20명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성동여자실업고는 의상과·인터넷비즈니스과 학생 15명이 참여해 '웨딩 컬렉션'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웨딩드레스와 액세서리를 제작해 판매한다.

서울시교육청 진로교육과 이대우 장학사는 "지난해부터 지역 시·도 교육청별로 고교 학교기업에 7000만~8000만원씩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수익을 올리기 시작한 곳이 여럿 된다"며 "학교기업에서 전문성을 미리 키운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도 70~80%대로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