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산업은행 등 7개 국책 금융기관들이 지난 2일 줄줄이 '반성문'을 제출했다. 감사원이 감사 결과 방만경영과 모럴해저드가 극심하다고 지적하자 뒤늦게 경영개선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직급별 임금상한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산업은행은 연봉제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기업은행은 단순업무의 아웃소싱을 늘리고,수출입은행은 상위직 20%를 감축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그런데 정작 '반성문'에 뼈저린 '반성'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모양새부터가 그렇다.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가 각 기관의 부기관장을 소집해서 '반성문'을 일괄적으로 받아냈다. 상황 인식도 문제다. 사전 브리핑에 나선 재경부 관계자는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찾기보다는 쏟아지는 여론의 질타를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사가 강하다.

급조된 탓에 '반성문'엔 강력한 개선 의지가 눈에 띄지 않는다. 대다수 국책 금융기관들은 임금 및 조직체계 개선 방향을 나열한 뒤,노동조합과 협의해 진행하겠다는 것을 명시하거나 그럴 방침이라고 설명한다. 노조가 동의해 주지 않으면 개선방안을 실천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한 발 빼는'모습이다. '낙하산'으로 투입된 경영진이 강성노조와 타협함으로써 무분별한 임금인상이 이뤄졌고 이 때문에 '반성문'을 쓰게 됐음을 애써 외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이대로가 지속되면 낙하산 양성기관인 재경부나 금융감독당국은 노조와 함께 '누이 좋고 매부 좋은'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감사원이 권고한 자회사 매각 등 구조조정도 비켜갔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이 나오면 이와 연계해 합리적으로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은행이 감사원 결과 발표 직후 '대우증권 매각 불가'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을 염두에 둔다면 '수용 불가'를 다시 천명한 것에 다름 아니다.

사실 국책 금융기관의 방만경영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낙하산 경영진과 노조가 적당히 타협하는 뿌리깊은 관행부터 시정돼야 할 것 같다.

박준동 경제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