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 < 문학평론가 >

아버지는 혈혈단신 신의주에서 월남했다. 어머니는 소위 말하는 전쟁 과부였다. 1953년 결혼한 지 일주일 만에 남편이 군대에 갔고,그리고 전사했단다. 어머니는 1950년대 말 아버지를 만나 재혼했고,당연하게도 내가 태어났다.

명절이면 늘 외로웠다. 세배 갈 곳도,성묘할 곳도 없었다. 제사를 지낼 수도 없었다. 동네 조무래기들이 세뱃돈을 자랑할 때나 어디어디 성묘를 갔다고 이야기할 때면 나는 늘 그들이 부러웠다. 그럴 때면 슬그머니 그들 곁을 빠져나와 마당 구석에 있는 감나무를 바라보며 어린애답지 않게 깊은 상념(想念)에 잠기곤 했다.

문자를 배우고 난 후엔 나름대로의 명절을 보내는 비책을 찾았다. 바로 책이었다. 책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상상할 수 있고,꿈꿀 수 있고,시간도 잘 갔고,읽고 나면 마음이 가득 찼다. 세배로 받은 몇 푼 돈을 가지고 딱지를 사서 놀이를 하는 조무래기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겠지. "짜식들,너희가 '삼국지'를 알아?"

나이가 들면서 나의 명절 독서는 좀 더 체계적으로 변했다. 평소에 읽기 힘든 좀 어려운 책이나 긴 책을 선정해서 명절 연휴 동안 독파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삼국지'도 몇 번 읽었고 솔로호프의 불후(不朽)의 명작 '고요한 돈 강',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 등과 같은 중후한 책을 많이 읽었다.

올해와 같이 추석 연휴가 길면 많은 사람들이 여행도 가고 고향에도 내려가고 하면서 나름대로 즐거운 휴가를 보낸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집안에서 친척,친지들과 어울려 고스톱을 치거나 성룡 주연의 영화를 재탕 삼탕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지낸다. 다 즐겁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처럼 명절이면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두어 권의 책을 권한다.

첫째는 '삼국지'다. 삼국지는 안 읽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10대가 읽을 때와 40대가 읽을 때 그 느낌은 각각 다르다. 요즘 나는 '삼국지'를 떠올리면서 유능한 참모 생각을 한다. 사실 유현덕이야 황족의 후손이라는 것을 빼면 동네 건달에 지나지 않았다. 몰락한 황족의 후손이 어디 유현덕뿐이었으랴. 관우와 장비를 만나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하는 것도 요즘으로 본다면 조폭이나 다름없다. 형님,형님 하는 것도 조폭들과 하는 짓이 똑같다.

그런데 무엇이 동네 조폭이었던 유현덕을 촉나라의 황제로까지 만들었을까. 바로 제갈량을 참모로 둔 덕이다. 제갈량은 당대의 지식인이었고 전략가였다. 그가 유현덕의 아들에게 출정하면서 남긴 출사표(出師表)를 보면 그의 충정(忠情)과 우국(憂國)과 애민(愛民)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 글은 동서고금의 명문(名文) 중의 명문이다. 그런 제갈량을 만났기에 유현덕의 황족이라는 명분은 빛날 수 있었다.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삼국지'는 이처럼 모든 시대를 관통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둘째는 '자본주의의 매혹'(원제:The Mind and The Market)이라는 책이다. 자본주의라는 절대적인 제도가 어떻게 성립되고,전개됐는지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사상사(思想史)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20대 때 잠깐 기웃거렸던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을 보았다. 또한 헝가리의 불세출의 비평가 루카치의 이념의 궤적을 보았다. 이 책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십수 번 읽으면서도 늘 머리 속에 남아있던 뿌연 안개를 걷어가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매혹'은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이 자본주의라는 세상을 명확하게 보게 해 주었다. 이 책을 읽은 이후 나는 과감히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안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추석과 같은 명절은 외로웠지만,그 외로움은 나에게 책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올해같이 긴 추석 연휴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