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포근하고 안락한 그 무엇인가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 외로워서도 편안해서도 아니다. 그저 기대고 싶고 추억에 젖고 싶을 뿐이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에게는 그 마음이 훨씬 더하다. 그래서 명절이 오면 고통스런 고향길을 되풀이하면서도 애써 고향을 찾는가 보다.

지금은 고향이라고 해봤자 예전 그 모습이 아니다. 인정스럽기만 했던 친척들,네것 내것 없이 우정을 나누던 친구들은 모두 도회지로 떠났고 나이든 어른들만이 동구밖 정자나무의 수호신마냥 묵묵히 고향을 지키고 있다. 이런 고향이건만 명절엔 활기가 넘친다. 사방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낯익은 얼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서 모여드는 것이다.

한번 고향을 가졌던 사람에게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아 있어 언제든 그것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그래서인가,가람 이병기는 "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암데나 정들면 못살리 없으련마는/그래도 나의 고향이 가장 아니 그리운가…"라며 향수를 달랬다. '사슴의 시인'으로 애칭되는 노천명은 "언제든 가리/마지막엔 돌아가리/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한껏 노래했다.

올해 추석명절은 윤달이 끼어 있어 어느 해보다 햇곡식과 햇과일이 풍성하다. 날씨 또한 전형적인 가을날씨여서 성묘하기에도 그만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이라면 귀향길에서 자주 일어나는 교통사고다. 엊그제도 서해대교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일어나 수십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한달음에 가고픈 고향에 미처 가보지도 못한 영혼들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다. "고향은 노고지리 초록빛 꿈을 꾸는 하늘을 가졌다"는 김수영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며 더욱 애석한 심정이다.

사실 추석분위기는 그리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탓이다. 그나마 잠시 시름을 달래고 옛정을 나누는 고향이 있기에 우리는 힘든 고향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가 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