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지난달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플래시토피아(Flashtopia)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플래시메모리로 정보기술(IT) 분야의 낙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지더라도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다.

10년 전만 해도 까다로운 공정기술에 비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품목에 불과했던 낸드플래시가 장차 반도체 르네상스를 이끌 주역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딱 한 가지.한계치가 어딘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저장용량 때문이다.

물론 용량이 저절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 수천분의 1 크기의 회로선폭을 이용하는 극한기술을 계속 발전시켜야 가능하다.


# 테라 시대 임박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른바 '황의 법칙(반도체 집적도가 1년에 두 배로 증가하는 법칙)'을 통해 낸드플래시 저장용량을 7년 연속 두 배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1999년 256메가였던 낸드플래시의 집적도는 올해 그것의 128배인 32기가로 증가했다.

이 같은 '황의 법칙'이 앞으로 6년간 지속된다면 낸드플래시 저장용량은 테라(1테라=1000기가) 시대에 진입한다.

일단 테라 시대가 열리면 반도체가 인간 두뇌를 따라잡는 일도 그다지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사람의 두뇌용량은 약 100테라비트.8테라비트짜리 반도체 칩을 16개 연결해 16테라바이트급 메모리카드를 제작한다면 곧바로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황창규 사장은 인공두뇌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창조적인 생각과 가족들에게 정을 주는 일을 뺀 나머지는 모두 플래시메모리에 맡겨도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플래시토피아'는 필연적으로 전통의 IT에 바이오기술(BT)과 나노기술(NT)을 융합한 'FT(Fusion Technology) 시대'와 조우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차세대 생명공학을 비롯한 첨단 기술을 반도체가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낸드플래시 예찬론자들의 주장이다.

# 초유의 신기술 CTF

이 같은 낙관론의 배경에는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개발한 'CTF(Charge Trap Flash)'라는 신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대용량 반도체를 만들려면 회로선폭을 50나노(10억분의 1m) 미만으로 만들어야 하는 극미세 공정이 필요한데 기존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반도체업계의 정설이다.

이 때문에 삼성은 40나노 공정을 준비하면서 이 기술을 개발했고 특허 등록 관련 절차도 모두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CTF는 어떤 기술인가.

낸드플래시 메모리 소자의 얼개는 △전기의 흐름을 제어하는 컨트롤 게이트 △전기를 저장하는 플로팅 게이트 △배선 기능을 하는 폴리실리콘 등 3개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런 구조로는 반도체의 대용량화를 지속적으로 실현하는 데 한계가 많다.

도체를 품고 있는 플로팅 게이트의 부피가 큰 데다 소자 간 정보 간섭 현상이 심해 게이트 간 간격을 좁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CTF 기술은 플로팅 게이트를 없애 버리고 '타노스'로 불리는 신물질을 이용해 부도체에 전기를 저장토록 함으로써 최소 크기의 소자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