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해 온 금융사들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각 금융권은 금융그룹화를 위한 몸집 키우기에 주력하고 있다.

금융의 대형화·겸업화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지주회사 체제로 금융그룹화를 이룬 은행권에 이어 증권·보험사들도 그룹화 작업에 본격 나섰다.

전문가들은 "금융그룹화는 대형화·겸업화라는 글로벌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급변하는 금융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앞으로 1~2년 내 메가톤급 금융환경 변화가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우선 2008년에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본격 시행된다.

현재 은행 보험 증권 자산운용 종금 선물 신탁 등으로 세분돼 있는 금융권역이 은행 보험 금융투자회사 3대축으로 재편된다.

자통법은 특히 증권 자산운용 선물 등으로 나눠진 증권업 내 '칸막이'를 없애 증권사의 전문화 및 대형화를 유도,골드만삭스같은 대형 투자은행(IB)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게 주요 뼈대다.

이를 위해 은행 고유 업무인 지급결제업무가 금융투자회사에도 허용될 전망이다.

정부는 자통법 제정에 맞춰 보험업법도 고쳐 중장기적으로 보험사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해줄 방침이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자통법은 은행과 증권 간 불균형 발전을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급결제업무 공유 등에 따른 업무영역 철폐로 금융권역 간 무한경쟁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급격한 금융환경 변화를 감안하면 은행과 증권사들의 몸집 키우기 경쟁은 한층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은행권은 이미 수 차례에 걸친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왔다.

우리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에 이어 지난해 말 하나금융지주가 공식 출범했다.

국민은행은 조만간 외환은행을 흡수합병해 자산규모 300조원,세계 50위권의 초대형 은행으로 거듭난다.

금융계는 그러나 은행의 M&A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외환은행과 LG카드를 각각 인수하게 되는 국민은행과 신한금융지주 등 '빅2'에 맞서 다른 은행들이 합종연횡을 모색할 것이란 분석이다.

자통법 시행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보게 될 증권업계도 대형화 바람이 불어닥질 전망이다.

김형태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자통법 시행에 맞춰 증권업 선물업 자산운용업 등을 아우르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는 M&A가 진행될 것"이라며 "은행과 마찬가지로 증권쪽도 5~6개 대형사로 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사실 삼성 현대 대우 우리투자증권 등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자본력이나 자산규모,돈을 굴리는 노하우 등 모든 측면에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등 글로벌 투자은행과 경쟁하기는 아직 역부족이다.

그래서 증권사들은 본격적인 M&A에 앞서 자기자본 확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처럼 국내 금융회사들이 대형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은 해외진출이다.

국내 금융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만큼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지난 6월 "국내 금융부문에선 왜 삼성전자처럼 해외에서 돈을 벌어오는 글로벌 금융회사가 없나"라는 화두를 던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민·하나 등 은행권은 차세대 주요 성장동력을 중국 동남아 등 이머징마켓에서 찾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이루기 위해서는 제조업 수출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금융이 해외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증권쪽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미래에셋증권은 이미 중국 베트남 등에서 교두보 마련에 나섰다.

성일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반도체 철강 유화 등 제조업은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갖춰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며 "이제는 금융업도 해외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금융계는 '금융의 삼성전자'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업계의 노력뿐만 아니라 금융감독당국의 규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정비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흥식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삼성전자가 글로벌플레이어로 성장한 것은 그룹 차원의 집중적인 투자와 인재지원,그리고 탁월한 경영력 리더십이 결합된 결과"라며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무대로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금융에서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오려면 정부가 다소 의도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IB(투자은행)를 키워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우수한 인재육성도 절실하다.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무엇보다 글로벌 플레이가 가능한 인재육성이 가장 시급하다"며 "전문성을 바탕으로 종합금융서비스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