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허리인 '과장'들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19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386세대들이 차장.부장 등 고참 간부로 옮긴 자리에 70년대 태생의 90년대 학번들이 속속 진입하는 추세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이들 포스트 386세대가 기업체 '과장'의 주력으로 자리잡으면서 기업 내부에도 상당한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

과장급으로 진입하고 있는 포스트 386세대의 삶과 고민.기업 내의 역할을 세 차례로 나눠 싣는다.

○표류하는 신세대 과장의 현주소

각종 고시학원 밀집지인 서울 노량진역 근처에서는 매일 밤 총총걸음으로 학원을 찾는 직장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30대 초·중반의 중간 간부 직장인까지 '학원행'에 가세하는 추세다.

중견기업의 김모 과장(34·서울 관악구)은 "회사 비전도 그렇고 7급 공무원으로 새 출발하는 게 낫겠다 싶어 행정법 강의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회사에 다니는 최모 과장(36)은 회사 몰래 야간 교육대학원에 다닌다.

그는 "내년 초 대학원을 마치면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게 된다"며 "앞으로 교원임용시험도 볼 계획"이라고 했다.

공무원,교사 등 안정된 직장이나 공인회계사 등 전문직 자격증을 따기 위해 뒤늦게 시험을 준비하는 신세대 과장들이 늘고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전문대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다.

서울 노량진의 한 고시학원 관계자는 "공무원시험이나 교원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늦깎이 직장인들은 주로 인터넷 강좌를 듣는다"며 "그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경제신문이 현대경제연구원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한다면 변호사 등 전문직이나 공무원을 택하겠다는 답이 71.7%로 나와 흔들리는 신세대 과장의 인식을 보여줬다.

대기업 과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자그만 무역회사를 차린 김성욱씨(35·서울 마포)는 "옛 동기들을 보면 그 회사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사람이 10%도 안 된다"며 "50%는 몇 년 있다 이직하거나 창업할 생각을 갖고 있고 남은 40%는 적당히 묻어가겠다는 부류"라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식품회사에서 마케팅 일을 하는 최모 과장(34·서울 영등포)은 "특별히 전문성이 필요한 일도 아니어서 회의가 들 때가 많다"며 "임원이 된 선배들이 회사 일에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는 "임원 승진 1∼2년 만에 옷 벗는 사람이 부지기수 아니냐"고 반문했다.

○공공부문 선호는 국가경제적인 약점

신세대 과장의 표류와 이에 따른 이직 증가는 '자기 중심적 성향'이 강한 세대 특성에다 노후 불안,보편화된 상시 구조조정,'팀제' 도입과 같은 기업 조직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파트너는 "신세대 과장의 동요는 평생 직장 개념의 소멸과 함께 '약고 합리적인' 세대적인 특성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신세대 과장들에게 과거처럼 초급 간부로서 헌신과 열정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자신의 꿈과 열정을 펼치려는 과장급 간부들이 줄어드는 대신 공무원 등 안정된 직장을 택하려는 흐름만 확산되는 추세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성용 베인&컴퍼니코리아 대표는 "과장급의 동요는 조직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고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며 "신세대 과장들의 유연한 사고와 창의성 등 장점을 수용하는 가운데 업무 열의와 능률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인사시스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분명한 보상체계에 따라야만 과장급들이 업무에 보람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 전반에 걸쳐 안정된 공공부문 일자리 선호만 커지는 현상은 이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국가 경제의 기반을 더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