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 와이스버거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옮긴 할리우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감독 데이비드 프랭글)는 20~30대 직장여성들이 볼 만한 코미디다.

지방 명문대학을 갓 졸업한 여성이 대도시 직장에서 겪는 설움을 감각적이면서도 코믹하게 그려냈다.

여주인공이 뛰어든 패션업계의 허실을 통해 현대 여성의 욕망도 가차 없이 묘사했다.

속도감이 넘치는 구어체의 소설 원작처럼 영화의 진행도 빠르다.

이야기는 앤드리아(앤 해더웨이)가 패션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패션잡지의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제2비서로 취직하면서 시작된다.

앤드리아는 폭군처럼 군림하는 직장상사로부터 살아 남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다 보니 직장 동료를 본의 아니게 제쳐야 하고 동거 중인 남자친구와의 틈새도 넓어진다.

악마 같은 상사 미란다에 대한 묘사는 코믹하면서도 재치가 있다.

폭풍우로 결항된 여객기가 자신의 일정에 맞춰 뜨도록 만들라고 비서를 다그치거나,출간되지도 않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자기 딸을 위해 구해오라고도 명령한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은 현실성이 부족하다.

그러나 직장인들이 때때로 접하는 불가능한 임무와 대책 없는 상사를 효과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또한 내면의 아름다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외모에 집착하는 현대 여성의 모습도 적절하게 반영돼 있다.

앤드리아는 커리어우먼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외관을 명품으로 치장해 간다.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급 공신은 단연 미란다역의 메릴 스트립이다.

그녀는 1980년대 할리우드 최고 스타의 관록을 입증했다.

바늘도 틈입하기 어려울 듯 싶은,까다롭고 완벽한 커리어우먼의 초상을 빚어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집안에서 남편과 이혼 직후 맨얼굴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그녀의 얼굴에선 직장에서는 성공했지만 가정에서는 실패한 커리어우먼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앤드리아를 둘러싼 두 남자 배역은 미스 캐스팅이다.

남자친구 네이트역의 에이드리언 그리니어는 빵집 조수로 여자친구와 소박하게 살아가는 역할에 맞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너무 도회적이면서 예민한 이미지다.

또한 유명 칼럼니스트인 톰슨역 사이먼 베이커에게서는 지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26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