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욱 < 논설위원 >

일본은 1941년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당시 보유중인 대형 항공모함 6척을 모두 투입했다.

기습공격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선 4척을 잃었다.

미국 역시 태평양전쟁에 임할 때만 해도 대형 항모가 6척뿐이었다.

이중 항모 4척은 1942년 말 수장됐다.

이후 3년간 양국의 움직임은 판이했다.

일본이 2척을 건조하는 동안 미국은 무려 16척을 진수(進水)시켰다.

이 같은 생산성과 경제력 차이가 전쟁의 향방을 결정했다.

가장 치명적인 장비를 가장 낮은 비용으로 가장 많이 생산하는 자가 승리를 거둔다는 경쟁의 원칙이 전쟁에서도 통용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존재를 과시한 북한의 무모함과 과격함은 국제사회와 연결되는 잔교(棧橋)마저 스스로 불태운 것과 다름없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일본 군부의 어리석음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승패의 결말은 이미 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북은 자위 목적에서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강변한다.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남북 군사력 균형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비대칭 전력'으로 인해 우리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다.

1953년 이후 유지된 정전협정 역시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자칫 잘못 대응하면 준전시체제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음도 물론이다.

비록 상황은 어렵지만 한반도 평화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비상한 대책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할 일은 자명하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안전과 민족의 생존을 담보하는 방어막부터 강화할 때다.

이를 위해 미국과의 안보협력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과의 철저한 공조체제 구축도 절실하다.

국제사회의 자동개입을 약속하는 신(新)인계철선을 만드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안보를 강화하는 것 못지않게 경제를 더욱 튼튼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1994년 남북한 특사교환 실무접촉 북측 대표인 박영수가 "그쪽(한국과 미국)에서 전쟁을 강요한다면 피할 생각은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헛소리를 했던 당시와 달리 사재기 파동 등 패닉상태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여하튼 다행스런 일이다.

이를 두고 안보불감증이 심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간 북한의 위협이 공갈에 그친 적이 많았다는 학습효과와 지난 10여년간의 지원으로 남북간 긴장국면이 완화된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1960년 이후 40여년간 연평균 7%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에 성공했던 것이 대북경제협력정책을 구사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된 셈이다.

북한에 현금과 물자를 제공했던 것은 최소한 동족이 굶어죽는 사태는 막자는 것이었다.

개혁과 개방에 나서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동참했으면 하는 기대도 컸다.

그렇지만 북은 핵무기로 응답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용정책에 투입됐던 자금의 사용처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핵보유국가와의 평화공존은 불가능하다.

미국이 일본에 승리했던 요인은 압도적인 경제력 격차에 근거한 국방력 우위에 있었다.

이 같은 교훈은 우리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