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어가다가,아니면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구타를 당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그것도 아무런 이유없이. 요즘 유럽의 10대들 사이에서는 자신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행인을 지목해 집단으로 구타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살인도 서슴지 않아,여행 가이드북에는 "10대들과 공연히 시비를 벌이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써 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심각성을 짐작할 만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청소년들이 행인을 구타하고 살해하는 장면을 카메라폰으로 찍어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전송하거나 인터넷에 올려 널리 알린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비행들은 특히 중·고교 학생들 사이에 유행병처럼 번져가고 있어 학교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는데 타인의 고통을 보며 즐기는 일종의 새디즘 현상으로 여겨진다.

이런 이유없는 폭력을 그들은 '해피 슬래핑(Happy slapping)'이라 부른다. '행복한 때리기'란 뜻으로,자신들의 행동을 역설적으로 미화시키기까지 한다. 해피 슬래핑은 영국 런던에서 시작돼 프랑스 독일 등지의 대륙으로 급속히 번져가더니,이제는 캐나다에서도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묻지마 구타'라 할 수 있는 해피 슬래핑의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사회심리학자들은 연예·오락 케이블방송인 MTV에서 방영되는 엽기적이고 우스꽝스럽고 폭력적인 스턴트 쇼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이 프로그램은 '잭애즈(jackass)'와 '잭애즈 넘버2(jackass Number 2)'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서 큰 성공을 이루었다.

해피 슬래핑은 대상이 무차별적이란 점에서는 '이지메'와도 통한다. 그러나 이지메는 서로 알고 지내는 또래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데 반해,해피 슬래핑은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장난삼아 우발적으로 저질러진다는 점에서 이지메보다 위험성이 훨씬 크다.

우리가 한동안 이지메로 홍역을 치렀기에 해피 슬래핑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가 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