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기념비 링컨메모리얼 등 각종 기념비와 기념관들이 몰려있는 미국 워싱턴DC의 내셔널 몰.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미군들을 추모하기 위한 '한국전 참전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도 이곳에 있다. 이 기념비에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한국)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한국)사람들을 지키려다 사라져 간 미국의 아들과 딸들을 추모합니다"라고 적혀있다.

제38차 한·미안보협의회(SCM) 참석차 19일(현지시간) 워싱턴을 방문한 윤광웅 국방장관이 이곳 기념비를 찾아 헌화하는 조촐한 행사를 가졌다. 이날 윤 장관의 헌화행사는 기념비를 찾은 미국인 아시아인 등 수십명의 관광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졌다. 특히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미국 동부지회(지회장 김홍기) 회원 30여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6·25전쟁과 월남전에 모두 참가했다는 한 70대 '노병'은 "요즘 고국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을 못이룬다"며 "과연 한국에 안보가 있는지 국방장관에게 물어보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김홍기 지회장은 윤 장관의 헌화행사가 끝난 직후 "몇 말씀 드리겠다"며 상의 안주머니에서 '결의문'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10월 9일 강행한 북한의 핵실험은 7000만 동포를 인질로 삼은 도발이며 이런 상황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것은 국민들을 불안에 빠뜨리는 일이다." 장관 수행원들의 저지로 김 지회장은 준비해온 글을 끝까지 다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북포용정책 중단,SCM 의제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제외 등 세 가지 요구는 빠뜨리지 않고 윤 장관에게 전달했다.

노병들의 갑작스런 결의문 낭독에 당황해하던 윤 장관은 "여러분의 걱정은 충분히 알겠지만 한·미동맹은 미래를 향해 굳건히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한다"고 답한 뒤 서둘러 자리를 떴다. 윤 장관은 과연 만리타국에서 고국의 안녕을 걱정하는 노병들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혹시 나이드신 분들이 우리 군의 발전상을 모른 채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참전기념비 옆 벽에 새겨진 'Freedom is not free(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라는 글귀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워싱턴=김수찬 사회부 기자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