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19일 정례 기자브리핑에서 북핵 사태 이후 경기 부양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경기관리를 하겠다"고 대답했다.

권 부총리는 "성장잠재력 이하로 경기가 하락할 경우 일정 수준의 대책을 통해 경기를 끌어올리는 것은 거시경제 정책당국의 당연한 책무"라며 "그런 면에서 단어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경기관리',즉 성장잠재력 수준까지는 경기를 유지하는 것을 거시경제정책의 원칙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북한 핵실험 사태 악화와 미국 경기 둔화 등으로 내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정부 추정 4.9%) 아래로 떨어질 땐 재정확대 등 거시정책 수단을 동원해 성장률을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결국 '경기 부양'을 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애써 '경기 부양'이란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7월 취임 후 경기 둔화가 지속되자 경기대책을 검토하면서도 부양이란 표현 대신 다른 말들을 동원했다.

그는 취임 후 2개월가량은 '파인튜닝(fine tuning·미세조정)'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권 부총리는 당시 "교역조건 악화로 실물과 심리의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경제정책의 큰 기조는 유지하되 '미세조정'을 통해 보완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지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의 전 분기 대비 증가율이 5분기 만에 최저치인 0.8%에 그쳐 경기 둔화 우려가 현실화되자 권 부총리는 경기대책의 표현 수위를 다소 높였다.

하지만 이때도 부양이란 말 대신 다소 낯선 '리밸런싱(rebalancing·재조정)'이란 용어를 들고 나왔다.

권 부총리는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총회에 참석해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올해는 거시경제에서 불균형이 발생하는 경우 '파인튜닝'하는 선에서 대응했지만,내년에는 거시경제 운용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리밸런싱'을 해나갈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거시정책기조의 전환을 적극 시사한 것이지만 극구 부양이란 표현은 피한 것이다.

그렇다면 권 부총리는 경기 부양이란 간단한 표현을 놔두고 왜 굳이 리밸런싱 등 어려운 용어를 골라 쓰고 있을까.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인위적 경기 부양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걸 기억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대통령이 임기 중엔 경기 부양을 않겠다고 했는데,부총리가 경기 부양을 하겠다며 대통령 말을 뒤집을 순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경기 부양이라고 하면 청와대에선 DJ정부 말기 신용카드 거품을 연상한다"며 "참여정부에서 경기부양은 금구(禁句)"라고 말했다.

한 민간경제연구원 원장은 "정부가 경기 부양이란 표현을 안 쓰려고 '말장난'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며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클 때일수록 정부가 경제정책 방향을 분명히 표현해 경제주체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