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경기 부양의 필요성에 대해 정부·여당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연간 4% 정도의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가까운 수치이며,따라서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정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지난 7월 열렸던 한 조찬강연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4% 초반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잠재성장률이란 '물가 상승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말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대로 내년 우리 경제가 4.3% 성장한다면 지극히 정상이라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한은은 실제로 올해 4분기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4.4%로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음에도 지난 8월 콜금리 목표치를 연 4.25%에서 연 4.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경제가 4%정도 성장한다면 금리를 인하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판단이다.

한은이 내심 걱정하는 것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것보다는 성장잠재력이 근본적으로 취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연간 3~4%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4% 초반)은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히 이뤄져야 하고,정부와 한은은 기업들이 마음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이 총재가 "불변가격을 기준으로 기업의 투자 규모는 지난 5~6년간 전혀 늘어나지 않았고 기업들은 어디에 투자할지 몰라 현금만 쌓아두고 있다"고 말한 것은 투자활성화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내년 경기가 극도로 악화될 경우 한은의 입장도 바뀔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4% 초반)보다 1%포인트 이상 떨어질 경우 낙폭을 줄이기 위한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내년 상반기 성장률이 4% 초반 또는 3% 후반에 머무를 경우에는 한은은 재정경제부의 경기 부양책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