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자로서 전하기 부끄럽고 어려운 얘기를 여러분께 하고자 합니다.며칠전 제가 썼던 ‘장하성펀드=헤지펀드’란 기사를 모두 취소하게 됐던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어느날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들과 저녁 먹을 일이 있었습니다.그 자리에서 P국장은 대한화섬 주식을 취득하고 태광산업 공격에 나선 장하성 펀드에 대해 “그건 헤지펀드다”라고 말했습니다.제가 물었습니다.“그걸 국장님께서 어떻게 분류하신 겁니까?”.

P국장의 답은 “그들은 스스로 헤지펀드라고 신고서에 명기했다”는 것이었습니다.조세피난처인 아일랜드에 펀드를 설립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했습니다.P국장의 말속에서는 ‘수십억원의 돈으로 증권계를 들썩거리게 하는 펀드’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배어있는 듯 했습니다.물론 산업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왠지 당장 기사화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저 이외에 그 얘기를 들었던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며칠후 다른 언론에서 국내에서 활동하는 헤지펀드가 3200개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보도는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장하성펀드=헤지펀드’라는 기사를 쓰기로 했습니다.다시 감독당국의 P국장과 통화했습니다.물었습니다.“그런데 자기 스스로 헤지펀드라고 명기한 게 좀 이상합니다”.P국장은 “나도 이상한데 지들이 그렇게 표기한 거야”라고 했습니다.가끔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017로 시작되는 장하성 교수 핸드폰으로 전화를 돌렸습니다.마지막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아쉽게도 장 교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시간은 마감시간인 오후 세시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독자여러분께는 죄송하지만 관청을 출입하는 기자는 이런 사안에 대해 재차 확인이 되면 당사자의 확인을 거치지 않고 기사를 쓸때가 많습니다.아직도 관청에 대한 ‘신뢰’ 비슷한 것이 남아있는 모양입니다.이게 저의 실수였습니다.어떻게 해서든 장교수와 통화를 했어야 했습니다.그리고 기사는 출고됐습니다.

기사가 나간후 장교수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기사를 이렇게 쓰면 어떻게 하냐,우리에게는 치명적이다.팩트가 다르다”.

당혹스러웠습니다.그래서 P국장에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어떻게 된일 입니까.제가 재차 여쭤봤을때도 헤지펀드로 등록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P국장은 의외의 답을 했습니다.“응 난 지금도 그건 헤지펀드라고 생각해요.그런데 처음 투자할때 내는 신고서에는 헤지펀드라고 명기는 하지 않았어요.내가 잘못 본거네요”.

어이가 없었습니다.그러나 P국장의 소신은 분명했습니다.“그래도 나는 헤지펀드라고 생각하고 장하성펀드를 헤지펀드라고 분류하고 있어요.기관투자가들이 조세피난처에 펀드 세우는거 봤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만약 기사를 ‘금융감독원이 장하성펀드를 헤지펀드로 분류하고 있다’고 썼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기자로서 자신이 쓴 기사가 오보로 판명났을때 받는 충격은 상상 이상입니다.물론 기사를 “금융감독원이 장하성펀드를 헤지펀드로 분류하고 있다”고 바꿔 쓸수도 있었습니다.하지만 “펀드 스스로 헤지펀드라고 명기했다”는 기본적인 팩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눈물을 머금고 기사를 모두 취소했습니다.

제가 장하성펀드에 최종 확인을 하지 않은 실수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많은 반성의 계기가 됐습니다.
하지만 금융감독 당국이 장하성펀드를 헤지펀드라고 보고 있고 이에따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외국자본의 먹고 튀기 논란속에 외국인들의 돈으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나선 장하성펀드가 헤지펀드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과제만 남은 셈입니다.한때 재벌 개혁의 상징이었던 장하성 교수가 새로운 방식으로 장기투자를 통해 기업의 효율화에 기여하고 주주의 고유가치를 찾아줄 것인지 아니면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을 활용해 외국자본의 배만 불려줬다는 평가를 받을런지 두고 볼 일입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