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부 도시 슈투트가르트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진델핑겐.메르세데스 벤츠의 진델핑겐 공장이 자리잡고 있어 '명차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2㎢에 이르는 공장 부지에 4만2000여명의 근로자가 근무하면서 하루 2100대,연간 47만대의 승용차를 생산해 낸다.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와 마이바흐 등 세계적인 명차들이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진델핑겐 공장은 작고 한적한 도시에 둥지를 틀고 있지만 100년 이상을 이어 온 자동차 역사의 흔적과 저력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생산라인은 매우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라가 작업 중인 근로자들에게서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기계적이고 조급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료들과 함께 차량 내부를 들여다 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볼트 하나까지 세심하게 조이며 여러 번 확인하는 모습은 대량 생산공장의 근로자라기보다는 수공업 장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처럼 이 공장의 최종 조립 공정은 90% 이상이 근로자들의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모든 차량을 고객의 주문에 맞춰 생산하기 때문이다.

운전석 계기판의 종류만 해도 고객의 요구사항이 천차만별이어서 4000여가지에 이른다.

헬무트 그뢰서 S클래스 제품기획팀장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차량에 고유한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엔 차량에 탑재되는 전장장치가 늘어나면서 고객의 요구가 더욱 다양해졌다고 덧붙였다.

생산라인에 서 있는 차체마다 오른쪽 범퍼 아래에 조그만 상자가 달려있어 눈길을 끈다.

블랙박스라고 불리는 어른 주먹 두 개 만한 크기의 이 상자에는 고객이 차량을 구입하면서 주문한 옵션사항이 기록돼 있어 공장 근로자들은 이 내용에 따라 생산 공정을 진행한다.

블랙박스에는 진델핑겐 공장의 독특한 공정을 실현하는 답안지가 들어있는 셈이다.

블랙박스는 도색작업을 마치면 떼어내지만 그 내용은 종이 차트나 바코드 형태로 기록돼 차체에 붙여진 채로 다음 공정 근로자에게 인계된다.

이후 단계부터 근로자는 차트를 보면서,자동화 로봇은 바코드를 읽으면서 고객의 요구에 한 치의 오차도 없게끔 차량을 만들어 나간다.

아다테 베키트 진델핑겐 공장 홍보팀장은 "대부분의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만큼 '메르세데스 퀄리티(Mercedes Quality)'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근로자들은 각자가 가진 기술에 따라 소형차인 A클래스에서부터 최고급 승용차인 S클래스까지 다양한 라인에서 근무한다.

한국과 달리 근로자만 동의하면 차종별 생산량 증감에 따라 전환 배치된다.

회사 관계자는 연공서열보다는 얼마나 다양한 보직을 경험했느냐에 따라 연봉액수가 정해지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전환 배치를 꺼리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근로자들을 위한 회사 측의 배려도 눈에 띈다.

이 공장에서는 차체를 90도로 세워놓고 일하는 근로자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다테 베키트 홍보팀장은 "메르세데스 벤츠 자동차는 근로자들의 장인정신과 엄격한 품질관리 시스템 속에서 탄생한다"며 "불량률 제로(0)를 자신한다"고 말했다.

슈투트가르트(독일)=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