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이나 습관은 참 무섭다.

여성의 몸매를 '35-24-36'식으로 말하던 시절이 지났는데도 치마나 바지를 살 때면 여전히 27이니 28이니 하는 사이즈를 댄다.

실제 옷에는 64,67,70cm 등으로 표기돼 있어 27이라고 하면 67cm나 70cm짜리를 준다.

1인치는 2.54cm지만 따지기 힘드니 대강 계산하는 셈이다.

100g당 가격을 표시해놓은 정육점에서도 "반 근만 달라"는 일이 흔하다.

감자나 고구마같은 야채도 마찬가지다.

시장상인의 경우 값을 물으면 으레 '한 근에 얼마'라고 답한다.

가구점에서 장롱을 구입할 때도 '몇 자짜리'로 따진다.

아파트와 땅의 기준 또한 제곱미터(㎡)가 아닌 평(坪)이다.

g,㎏,m 등을 법정 계량단위로 도입한 지 4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실생활에선 이처럼 척관법이 그대로 통용된다.

부동산중개업의 88%가 '평',귀금속판매업의 71%가 '돈'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마당이다.

그러나 같은 한 근이라도 고기와 야채의 무게가 다르고 금 한 돈이 3.75g인 걸 모르는 사람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때문에 발생하는 혼선과 막대한 국내외적 경제 손실을 막겠다며 정부가 척관법 사용을 근절하겠다고 나섰다.

내년 하반기부터 '평''돈''근' 등을 쓰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매매계약서에서 평을 병행표기만 해도 처벌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도량형이나 계량단위 통일은 중요하다.

중국의 평양냉면집에 가면 냉면도 g단위로 판매한다.

뭐든 바꾸기는 어렵지만 꾸준히 홍보하고 유도하면 달라지게 마련이다.

고기의 경우 100g 단위제가 정착돼가고 있는 중이다.

아파트 역시 평과 ㎡를 함께 쓰되 ㎡를 앞세우면 언젠가 익숙해질 것이다.

몇몇 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선 검진 전 생활습관 등을 묻는 설문지에 답지를 따로 붙여놨다.

통계 처리는 편하겠지만 나이든 이들은 불편하다.

고객용 아닌 병원용인 셈이다.

오랫동안 써온 걸 병행표기도 못하게 한 채 과태료를 물리는 건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걸핏하면 모두를 범죄자로 만드는 발상은 버릴 때도 됐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