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 재.보선에서 참패한 열린우리당이 거센 후폭풍에 휩싸인 가운데 여당발(發) 정계개편이 본격적인 추진 단계에 들어섰다.

재.보선 참패를 사실상 "열린우리당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는 국민의 뜻"으로 해석한 김부겸(金富謙) 비상대책위원의 말처럼 더이상 이대로 주저앉아 있어서는 죽도 밥도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정계개편을 향한 여당내 발걸음이 한층 바빠지고 있는 것.

김근태(金槿泰) 의장은 26일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평화번영세력의 결집을 통해 국민에게 새 희망을 제시하겠다"며 정계개편 추진을 공식화했다.

여당내에서는 좁게는 지도체제 개편론으로부터 조기 전당대회 개최론, 재창당론, 전당대회 없는 통합 추진론이 나오고 있고 정치권 새판짜기를 위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탈당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이 봇물터지듯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도체제 개편론 = 김근태(金槿泰) 의장을 중심으로 한 현 비상대책위 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해 정계개편을 실질적으로 논의하고 추진할 수 있는 기구를 꾸리는 것으로 첫 단추를 꿰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물론 여당내에서 현 지도부에 선거 참패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은 많지 않다.

2005년 이후 4차례의 재.보선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한 책임이 지난 5.31 지방선거 이후 출범한 현 지도부에 있다고 보기 어렵고, 단순한 지도부 문책론만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비대위 체제가 당내의 다양한 계파의 목소리를 담아내 정계개편의 방향을 논의, 추진할 수 있는 구심력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록 비대위가 형식상 전권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당의 존폐를 결정할 의사결정기구가 되기에는 참석자의 범위가 너무 좁고 대표성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당 일각에선 개성공단 춤 파문 등으로 리더십에 깊은 상처를 입은 김 의장이 일단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뒤 당과 원내를 총괄하는 통합지도부가 비대위를 꾸리고, 이와는 별도로 당의 운명을 공식 논의할 확대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당 초선의원들의 모임인 `처음처럼'은 이날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촉구하면서 현 비대위가 전당대회 등 정치일정을 준비하는 소임을 완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목희(李穆熙) 전략기획위원장도 25일 밤 재.보선 패배가 확정된 직후 "곧 재창당의 기조를 제시하겠다"며 "재창당을 하더라도 현재의 김근태 의장 체제가 그 작업을 맡아야 한다"고 말해 현 지도부 존치론을 주장했다.

이와 관련, 비대위는 휴일인 오는 29일 오후 긴급회의를 갖고 당의 진로를 논의하고, 내주초 의원총회를 열어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조기 전대 논란 = `처음처럼'은 초선의원 23명이 서명한 성명서를 통해 내년 2월말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늦어도 1월 이내로 앞당겨야 한다며 조기 전당대회 개최론을 주장했다.

내년 대선을 감안할 때 2월말 전대는 때 늦은 감이 있기 때문에 1월로 앞당기고, 현 비대위가 11월말까지 전대 준비를 비롯한 정치일정을 확정하는 등 전대까지 당을 이끄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기 전대 개최가 과연 필요한 지를 놓고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고 전당대회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우리당내 중도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국민의 길'은 재창당론이나 조기 전대론은 오히려 기득권의 외피를 두텁게 해서 실질적인 정치권의 재편을 어렵게 한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 길' 운영위원인 전병헌(田炳憲) 의원은 "재창당은 호박에 줄 긋는 것이고 조기 전대는 호박껍질을 두껍게 하려는 것"이라며 "지금은 한나라당에 반대하고 우리당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새로운 집권의 희망과 비전의 틀을 새롭게 짜서 새 당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당대회의 성격을 놓고 `처음처럼'은 "당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새롭고 폭넓은 세력 연대를 구축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해 전대를 통해 분위기를 일신한 뒤 우리당 중심으로 외부세력과의 연대를 추진한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그러나 김부겸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존치를 전제로 정계개편을 말하는 것은 희망사항일뿐"이라고 말했고, 주승용(朱昇鎔) 의원도 "새로운 구심점으로 모여서 창당수준의 전대를 한다면 모르되, 우리당 자체 전대는 무의미하다"며 조기 전대론을 비판했다.

이와 관련, 우리당 핵심관계자는 "권한을 위임받은 지도부가 일단 물밑에서 민주당과 고 건(高 建) 전 총리측 등 외부세력과의 물밑 대화를 통해 충분한 준비작업을 한 뒤 전당대회는 우리당의 해체와 신당의 출범을 알리는 절차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신기남(辛基南) 전 의장은 이날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 "재창당은 필요없다"며 "우선 우리당을 똑바로 세우고 우리당이 주체가 돼서 민주개혁세력의 연대를 이뤄나가야 한다"며 대선후보 조기 선출론을 재차 주장했으나 당내 호응은 거의 없는 상태다.

◇노 대통령 탈당 = 한동안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던 노 대통령 탈당론이 10.25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여당내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 탈당론은 대통령 본인이 지난 8월 "탈당은 하지 않겠다. 임기후에도 당원으로서 백의종군하겠다"며 탈당론을 일축하고 친노그룹이 `노 대통령 배제 신당론'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그동안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호남권의 한 여당 초선의원은 이날 "대통령이 이런 때일수록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시는 게 정계개편이 더 자유롭지 않겠느냐"며 "대통령을 다들 의식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 열쇠는 대통령이 쥐고 있다"고 탈당론을 거론했다.

`헤쳐모여식 통합신당' 창당시 최우선 협상대상인 민주당이 "노 대통령 탈당이 없으면 통합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여당을 압박하고 있는 것도 변수다.

한편 민주당이 여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접촉과 설득을 강화하면서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개별 탈당이 이뤄질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으나 개별 탈당의 정치적 부담 때문에 실제 결행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