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규 국정원장이 물러나기로 한 것은 외형상 자발적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막판에 급부상한 외교안보 라인의 전면 물갈이론에 따른 부담감이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원장의 사퇴 결심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뤄졌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사퇴드라이브'에 부담 느낀 듯

김 원장의 거취는 막판까지 오리무중이었다.

청와대도 전날까지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26일 이종석 통일장관이 사의표명을 했을 때까지도 여권 주변에서는 김 원장의 유임기류가 여전했다.

업무의 연속성 측면에서 외교안보라인에 적어도 한 명은 남아서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아나가야 한다는 논리가 먹히는 듯했으나 막판 "이왕에 바꿀바에야 모두 바꿔 분위기를 쇄신하는 게 낫다"는 여권 핵심 주변의 쇄신론에 밀린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김 원장이 외교안보 수장들의 줄사퇴 행렬의 막차를 타게 된 것이다.

국정원이 김 원장의 사의배경에 대해 "외교안보 진영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라고 설명한 데서 이런 복잡한 심사가 묻어난다.

실제 김 원장의 교체 여부를 놓고 청와대와 국정원의 기류에 차이가 있었다.

애당초 청와대에서는 이종석 장관만 유임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던 반면 국정원측에서는 김 원장의 유임론에 무게가 실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국정원이 수사한 대공(對共) 사건과 김 원장의 사의표명을 연결짓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단순히 북한 공작원 접촉사건에서 운동권 출신 386들이 연결된 간첩사건으로까지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일각에서 나돌고 있는 김 원장과 386간의 불화설 등과 무관치 않은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으로 안보 불안감이 확산되는 시점에 불거져 그 배경을 둘러싼 의혹까지 낳고 있어 김 원장의 사의 표명을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관측에 무게를 실어준다.

반론도 제기된다.

수사라는 것 자체가 어느 시점에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하는 등 혐의가 뚜렷해졌을 경우 그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을 들어 이번 사건과 김 원장의 사의 표명을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김 원장의 사의 결심은 외교안보라인의 물갈이라는 거센 흐름에 따라 자의반,타의반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물러나는 김 원장은

김 원장은 재임기간 무난하게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취임 10일 만에 김 원장은 이른바 'X파일사건'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옛 국가안전기획부의 특수 도청팀인 '미림팀'의 불법감청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지난 7월5일 북한 미사일 발사 때는 해외 출장 중이어서 구설수에 올랐고 10월9일 북한 핵실험 때는 정보력 부재를 질타하는 지적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