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는 내부설비가 녹슬면 위험하다.

감마선이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진이나 폭격 등을 당했을 때 충격을 견뎌내기 어려워진다.

이 같은 위험을 방지해낼 수 있는 물질이 바로 '방청그리스'다.

방청그리스로 처리하면 지진같은 충격에도 안전하게 견뎌낼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선 지금까지 이 방청그리스를 미국에서 전량 수입해 썼다.

그런데 이 물질을 국내에서 개발해낸 중소기업이 있다.

BIT범우연구소(사장 최종우)가 바로 그 회사다.

BIT는 이 방청그리스를 개발해 미국 업체를 제치고 울진6호기에 납품했다.

BIT는 서해안 석포리 남양만이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언덕에 대지 3500평에 5층짜리 석조 건물로 이뤄진 연구소다.

이 연구소엔 55명의 연구원들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기술은 원자로용 그리스뿐이 아니다.

2002년 8월에 설립된 이 회사는 철강압연유 한 분야에서만 고속강판 압연유조성물 등 8개의 특허를 따냈다.

이 외에도 소성가공유 등에서 세계 1~3위 수준의 첨단기술로 개발된 물질을 약 50여가지나 확보해 놓고 있다.

BIT가 일반중소기업과 다른 점은 오직 연구개발(R&D)만으로 회사를 영위해 나간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경영이 가능할까.

BIT는 범우연합(회장 김명원)이란 중소기업 그룹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범우연합이란 크게 6개 기업으로 조직된 네트워크다.

범우화학을 비롯 범우,벡스인코퍼레이션,BIT범우연구소 등 4개 국내 법인과 중국 상하이와 인도 마드라스에 있는 현지법인 등 6개 회사와 양산 시화 등 4개 공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범우연합은 다른 중견그룹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룹 안에 속해 있는 기업들이 완벽하게 분업체제를 유지한다.

먼저 매출액 660억여원 규모인 범우화학(사장 이종구)은 자동차 철강 전자 부문에 필요한 금속가공유 생산에 집중한다.

범우(사장 최대영)는 표면처리제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벡스인코퍼레이션(사장 신우진)은 세척제 분야에서 새로운 물질인 WD-40 등을 생산하는데 몰두한다.

이들 3개 분야는 상호보완적이다.

최근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범우화학에 금속가공유와 표면처리제를 공급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범우화학은 금속가공유는 스스로 생산 공급하고 표면처리제는 범우에 넘겨줘 만들도록 했다.

모비스에 공급하는 세척제는 당연히 벡스인코퍼레이션이 공급했다.

범우그룹은 이 같은 경영방식을 '연합경영'이라고 부른다.

연합경영의 특징은 △분업화 체제 △공동기술 개발 △분야별 전문화 △협력마케팅 △연합적 자원관리 정보시스템 가동 △공동 경영이념 준수 등을 꼽을 수 있다.

범우연합의 김명원 회장은 연합경영을 시작한 발단에 대해 "앞으로는 중소기업도 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지 못하고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시장을 세분화해 그 작은 분야에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따라서 분업화 및 전문화 체제를 갖춘 연합경영 체제는 단독 중소기업이 해낼 수 없는 대규모 기술개발 투자를 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더욱이 연합 내 기업들이 중복투자를 하지 않고 선진국 기업과 경쟁할 수 있게 되는 강점을 가졌다.

김 회장은 "연합경영은 경영기법보다 기업윤리에 바탕을 둔 경영이념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범우연합은 모든 경영판단을 내릴 때 △인간존중 △고객가치 △기술중시 △사회공헌 등 4가지 경영이념에 적합한지를 리서치한 뒤 실행에 옮긴다.

이런 경영이념 덕분에 1973년 설립된 범우는 33년간 단 한 사람도 회사측에서 퇴출시킨 사람이 없다.

또 공장에서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범우가 경영이념을 실천한 덕분이라고 사원들은 얘기한다.

범우연합은 생산공급 분야에선 분업화를 유지하지만 마케팅 분야에선 협력마케팅 활동을 벌인다.

지방에 제품을 공급하는 네트워크는 범우화학이 맡는다.

범우화학은 범우하이켐 범우켐 범우케미칼 등 16개 지방영업소를 갖추고 있다.

현재 범우연합의 제품수출 규모는 약 60억원 선.주로 유럽에 수출한다.

이 수출제품의 생산은 주로 범우화학이 하지만 관련 국제업무는 범우가 담당한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을 대상으로 한 소비재유통 분야는 벡스인터코퍼레이션이 맡고 있다.

범우연합은 이 같은 신축적인 분업화 및 협력활동을 통해 2010년까지 적어도 3개 이상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할 것을 목표로 세워놨다.

연합경영이란 독특한 기업경영 방식이 차츰 세계시장 진출에 밑거름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연합경영은 최근 들어 도원디테크 버추얼다임 등 다른 중소기업들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치구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