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溶俊 <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를 완전 통합하는 기구 개편안이 나왔다. 언론보도로는 우정(郵政)업무를 제외한 정통부의 모든 업무와 방송위원회의 업무에다가 문광부의 관련 업무까지 합하는 가칭 '방송통신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한다. 방송통신위원들의 합의제로 운영하되 위원장이 책임을 지는 정부부처의 형태를 가미하겠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신분 문제,공영방송 별도 규제기구의 구성,관련 부처들의 문제 제기 등 세부적인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기구개편의 커다란 원칙은 설정된 셈이다.

융합기구 구성은 방송과 통신의 이질성(異質性)이 워낙 크고 관련 부처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지난 7년 동안 진전이 없었다. 뒤집어 보면 관련 당사자들이 2개월 만에 결론을 낼 수 있는 사안을 그동안 소모적 논쟁만 일삼았는가 하는 허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이 8년 만에 융합기구인 Ofcom을 출범시킨 것을 감안하면,한국은 초고속으로 융합기구를 탄생시킨 셈이다. 70년대 경부고속도로의 건설과 90년대 IT 최강국의 저력이 융합기구 구성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융합기구를 서두르게 된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대선(大選) 정국에 돌입하는 내년에는 융합추진 자체가 물건너 갈 것이라는 점이 지적돼 왔다. 또한 융합기구를 구성해야 IP-TV를 비롯한 신규서비스들을 허가해 융합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합기구의 구성 방식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방통 융합의 사회적 목적과 융합방식,기존 방송위와 정통부에 대한 전문적 기구 평가와 사회적 의견수렴이 빠진 채 관련 부처들의 '잔치'로 전락했다.

영국의 융합기구인 Ofcom을 탄생시킨 주역인 공공문제연구소(IPPR)는 3년간에 걸친 기존 조직 평가를 거쳐서 11가지 융합기구 개혁의 원칙을 정립했다. 주요 골자는 기존 조직들이 공중(公衆)에 책임성 있게 공개되지 못했음을 반성하고,융합규제는 보편적 접근과 민주주의를 보장하고,미디어소비자평의회를 구성할 것 등을 권고했다. 이를 바탕으로 Ofcom은 소비자 및 시민에 대한 책임성과 투명한 공개,영국적 창조성의 재발견과 디지털 강국의 창출을 융합 목적으로 설정하였다.

방송위원회와 정통부의 업무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생략된 채 이뤄지는 융합기구는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뿐이다. 지상파 재송신,지상파 DTV 정책 등 수많은 정책실패를 반복했던 것이 방송위원회와 정통부였다. 더군다나 최근 3기 방송위원회 위원들의 연이은 낙마에서 나타난 인사검증 시스템의 부재와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 방지 방안에 대한 고민이 설명되지 않고 있다.

융합기구 구성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기존의 방송통신정책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 융합서비스가 시급하다면 관련부처가 한발씩 양보해 서비스를 시작하고,추후 융합기구가 규제하면 될 것이다. 방송위와 정통부가 이 정도도 양보를 못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라는 한 식구가 되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는 융합에서 필요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생략하였다. 관련부처의 이해득실이 중심과제가 되면서 시민대표와 일부 전문가들을 들러리로 내세운 자리에서 진정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융합추진위원회에서는 우선 기구통합의 원칙을 정하고 공청회 등의 자리를 통해 사회적 공론화를 하겠다고 한다. 관련부처의 이해관계를 버리고 처음부터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융합 추진이 주는 교훈은 더 이상 평범한 시민들이 정책결정의 들러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요 정책결정이 관련부처의 이해득실을 벗어나 평범한 시민들에게 책임성 있고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더 이상 융합 작업이 관련부처들의 '잔치'로 그치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