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제1도시 알마티에서 북쪽으로 1시간30분여를 날아 도착한 신(新) 수도 아스타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고작 3700달러인 국가의 수도라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로마 제국의 성(城)으로 보임직한 국영석유가스회사 카즈무나이가스(KMG)의 웅장한 건물,거대한 돔 양식 지붕의 현대식 대통령궁. 중앙아시아의 사막 한 가운데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를 옮겨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카스피해 서쪽에 접한 아제르바이잔.이 나라의 경제성장률은 놀랍다.

지난해 26.4%,올해 예상 성장률은 30%가 넘는다.

힘의 원천은 '오일'. 카자흐스탄이 원유를 팔아 번 돈이 연간 100억달러에 달할 정도다. 유전을 선점하려는 오일 머니들의 경쟁은 치열하다는 용어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중앙아시아행 비행기는 거의 모든 편이 만석이다. 석유 추정 매장량 2000억배럴에 달하는 카스피해를 잡기 위해 셰브론 엑슨모빌 셸 ENI 등 세계적 오일 메이저들이 집결하고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지난해 카자흐스탄 유전에 투자한 금액만 46억여달러에 이른다.

앞으로 매년 50억달러가 투자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전체 외국인 투자 금액(64억여달러)의 70% 이상이다.

석유를 끌어가기 위한 파이프라인(송유관) 건설 사업도 빅뱅(대폭발)이다. 옛 소련 시절부터 이 지역의 영유권을 독차지해 왔던 러시아를 따돌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은 지난해 5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그루지야의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 세이한까지 이르는 'BTC(바쿠-트빌리시-세이한) 라인'을 완공하며 카스피해에 빨대를 꽂기 시작했다.

미국은 단일 파이프라인으로는 세계 최장(1770km)인 이 노선을 보호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에 군사기지 건설도 추진 중이며 '카스피해 선제 수비'라는 이름으로 대테러 작전도 계획하고 있다.

중국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8월 카자흐스탄의 석유기업인 페트로카자흐스탄을 42억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주고 인수했다. 3개월 후 카자흐스탄 아타수와 중국의 두산쯔를 연결하는 길이 1000km의 송유관을 완공,지난 4월 말 처음으로 석유를 들여왔다.

곽정일 한국석유공사 카스피해 사무소장은 "카자흐스탄 최대 유전 지대 중 하나인 악토베는 완전 중국판"이라며 "중국은 중앙아시아의 에너지 블랙홀"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지난 8월 말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이 지역 자원 흡수에 나섰다. 석유개발업체인 인펙스가 카자흐스탄 최대 유전인 카샤간 유전에 투자했지만 추가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페트로카자흐스탄 인수전에서 중국에 치인 인도 역시 절치부심하며 최근 중앙아시아로 가는 송유관 건설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이제 첫 단추를 끼우기 시작했다.

석유공사 등을 주축으로 한 컨소시엄은 카스피해 잠빌 광구(추정 매장량 10억배럴)의 지분 27%를 확보해 개발에 나섰고,LG상사는 악토베 근처의 3개 광구의 지분을 확보하며 활발한 유전 사업을 벌이고 있다.

백판지 기업에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세림제지도 지난해 카자흐스탄의 사크라마바스 광구 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지난달에는 웨스트보조바 광구의 시추 작업을 시작했다.

알마티에서 만난 최원유 세림제지 이사는 "개발 경쟁이 너무 치열해 사업하기가 힘들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석유 수입량 세계 5위,소비량 세계 7위의 한국이 중앙아시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특별취재팀/타슈켄트·아스타나·알마티=김선태·안정락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