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롤 말이야,'롤'은 롤러인 걸 알겠는데 '티'는 뭐냐?"

LG전자 MC연구소장인 안승권 부사장은 한 사원이 동료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듣는 순간 '아차,프로젝트명을 바꿔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티롤(Tirol)'은 LG전자 전략폰인 '샤인' 개발 프로젝트 이름.원래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관광지로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꼭 가 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샤인 프로젝트 이름을 '티롤'이라 붙인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채기 어렵고 '빛나는 순간'이라는 제품 콘셉트에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그런데 웬걸.뒤에 붙은 '롤'이 '스크롤'을 암시하는 말로 인식될 줄은 몰랐다.

제품 전면에 배치한 스크롤은 샤인 디자인과 기능의 핵심이다.

스크롤을 위아래로 움직이면 메뉴,문자메시지,MP3플레이어 등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안 부사장은 "생소하기만 한 티롤이란 단어가 스크롤을 암시하는 말로 해석되다니 어이가 없었다"며 "기밀이 샐까봐 프로젝트명을 '모바일 세상을 바꾼다'라는 뜻의 'CMW'(Change the Mobile World)로 당장 바꿔버렸다"고 들려줬다.

휴대폰 메이커들의 전략폰 정보 단속은 이렇게 치밀하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출시 순간까지 사소한 정보라도 새나가지 않도록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정보를 단속하기 위해 만든 특수기획팀 내부에서조차 이메일이나 프레젠테이션 자료 등 파일 문서는 주고받지 않고 회의 내용을 머릿속에 기억하게 한다.

팬택계열에서는 상품기획과 디자인에 관한 정보 교환을 서면으로만 진행한다.

회의나 보고가 끝난 후 문서는 그 자리에서 파기한다.

원본 파일은 담당자만 가지고 있는 게 원칙이다.

특히 디자인본부에서는 별도의 서버에 정보를 저장하며 본부장과 담당자만 파일을 열람할 수 있게 보안시스템이 설계돼 있다.

서버 패스워드는 수시로 변경하고 누가 언제 서버에 접근했는지 기록을 남긴다.

어떤 제품을 개발하는지 숨기기 위해 프로젝트명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팬택계열이 최근 내놓은 슬림슬라이드폰 '스카이 IM-S130' 개발 코드명은 'EI2'였다.

김 모 과장은 "E12가 있는 줄도 몰랐고 옆자리 동료가 E12에 참여한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2년 전 S130 기획 단계부터 철저히 개인 단위로 작업이 진행돼 차기 제품 컨셉트를 팀장과 담당자만 알았다"고 들려줬다.

김 과장은 이어 "S130 디자인을 맡은 장 모 대리가 자꾸 자기 지갑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 한참 웃었다"고 얘기했다.

장 대리는 외국 잡지에 실린 특이한 모양의 수도꼭지를 보고 디자인 영감을 얻은 뒤 수도꼭지 사진을 한 달 동안 지갑에 넣고 다니며 동료들 몰래 들여다보곤 했다.

김현지 기자 n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