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혼자 찾아가겠다고 거듭 사양했으나 끝내 수녀 두 분이 부산역까지 차를 가지고 나왔다.

뜻밖의 호사를 누리며 20분가량 차를 타고 부산지하철 2호선 금련산역에서 금련산 자락으로 올라가자 금세 수녀원이 나온다.

부산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의 본원이 있는 곳으로 입지가 탁월하다.

금련산 자락의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수녀원에서 광안리 해변까지는 직선거리로 500m 남짓하다.

걸어서 5분이면 바닷가에 이르고 수녀원에서도 광안대교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제가 1980년 입회했을 때만 해도 참 좋았어요.

그때는 수녀원 주변에 인가도 드물었고 광안리 앞바다가 시원스레 다 보였지요.

그러나 1988년 올림픽 때 요트경기장이 생기면서 주변에 상가가 형성된 데다 광안대교가 수평선에 걸려서 바다 경관이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게 됐어요.

걸어서 5분이면 당도하는 바다가 너무나 멀어졌어요."

수녀원의 살림을 돌보는 박돌로로사 수녀의 말이다.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는 성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스위스 캄의 하일릭크로이츠(성십자가) 수녀원이 1931년 중국 연길교구에 6명의 수녀를 파견하면서 시작됐다.

선교,의료,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던 초기의 한국 공동체는 1945년 해방과 함께 만주지방이 공산화되면서 일체의 소유 자산을 몰수당하고 해산됐다.

연길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던 14명의 수녀들이 청주 성심보육원에 모였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피난길에 올라 1951년 부산 초량동에 다시 모여 성분도자선병원을 열었다.

부산에서 새로 시작한 수녀회는 1965년 지금의 광안동으로 옮기고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 1981년 한국 진출 50주년 때 스위스 모원에서 독립,교황청 직속 자립 수녀회로 거듭났다.

수련소가 있는 본원에만 150여명의 수녀가 있고 전국의 성당과 병원,각종 복지시설,교육기관,해외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전체 회원은 500명에 이른다.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도 여기 소속이다.

땡땡땡땡~.정오의 종소리가 울리자 각 소임지에서 맡은 일을 하던 수녀들이 속속 성당으로 모여든다.

수녀들이 하루 5차례 성당에 모여 성경의 시편을 노래하며 함께 기도 드리는 시전례(성무일도)의 하나인 낮기도 시간이다.

행여 기도에 늦을세라 종종걸음을 치고 뛰기도 한다.

성 베네딕도는 규칙서에서 "성무일도의 시간을 알리는 신호를 듣거든 즉시 손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가장 빠르게 달려올 것"이라면서 "아무 것도 '하느님의 일(오푸스 데이)'보다 낫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님,저희의 기도를 들으소서." 잔잔하고 청아하면서도 간절한 기도 소리가 성당을 넘어 수도원 전체로 번져나간다.

이심전심(以心傳心),별다른 신호가 없이도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놀랍다.

낮기도가 끝나자 수련기 수녀들을 책임진 최안젤라 수녀가 성당 바로 앞의 외부 손님용 식당으로 안내한다.

식탁에는 회와 매운탕이 준비돼 있다.

바닷가 수도원이라고 해도 불청객에 대한 대접이 황송할 정도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할 것이다.

장상이나 형제들은 온갖 사랑의 친절로써 그를 맞이할 것이며"라고 한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 그대로다.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계십니다.

특히 하느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숨을 불어넣었으니 모든 사람 안에 하느님이 깃들어 계신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존엄한 존재인 것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과 사람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보여준 분이 예수님이지요."

마치 멀리서 조카나 동생이 찾아온 것처럼 최안젤라 수녀는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물론 모든 이에게 하느님이 깃들어 있으니 그들을 어찌 가벼이 여기고 함부로 대할 것인가.

수녀원에서 하룻밤 쉬면서 영적인 시간을 가져보라는 권유까지 받고 보니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식사를 마치고 수녀원을 둘러보는데 건물과 방 이름들이 재미있다.

밝은집,조은집,언덕방,은혜의집,해바라집,은혜의발자취….이해인 수녀가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수녀원은 성당을 중심으로 수련원과 식당 등이 ㅁ자 구조를 이루며 왼편에 배치돼 있고 성당 오른편에는 할머니 수녀들이 사는 조은집,윗쪽에는 다른 수녀들의 숙소 건물이 있다.

조은집 아래로는 은혜의발자취가 있고 정문 쪽으로 내려오면서 안내실과 사제관,'로사리오 기도의 길',피정공간인 '은혜의집'과 분도유치원,양로원 등이 자리잡고 있다.

주방앞 옥상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 젓갈 등이 담긴 100여개 항아리가 있어 수녀들의 살림살이를 짐작케 한다.

수녀원 입구 은혜의집 1층에 있는 해인글방은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61)의 집필실인데 아기자기함 그 자체다.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가비와 크고 작은 기념품,메모한 쪽지들과 장식품 등이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마침 외출 준비를 하고 있던 해인 수녀는 "시력을 거의 잃은 소녀가 취직 자리를 부탁해서 나가봐야 한다"면서도 시집 '민들레의 영토'와 책갈피 등을 선물로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해인글방으로 안내했던 최살루스 수녀는 "대학 1학년 때 해인 수녀님께 편지를 쓰면 이면지에 답장을 써 조가비 하나와 함께 보내곤 했다"면서 웃는다.

저녁기도 시간.흰색 수도복 차림의 수녀들은 다시 성당에 모여 이렇게 기원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긴장과 위기가 고조되어 가는 이 때, 주님,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인류의 평화와 선을 위해 이기심 없이 모두가 마음을 합치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다.

어둠이 내린 수녀원 마당에 서니 모든 것이 평화롭다.

부산=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