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왕자웨이 감독의 데뷔작 '열혈남아'(1987)는 건달의 사랑을 감각적으로 그린 수작이었다.

주인공이 버스에서 내린 여자친구와 영원히 이별할 것임을 암시하는 카메라워크는 지금도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왕 감독을 흠모하는 영상원 출신의 신예감독 이정범은 자신의 데뷔작에 이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다.

조폭을 다룬 것은 공통점이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조폭영화로는 드물게 모성애를 주제로 삼고 있다.

형식적으로도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했던 전작과 달리 등장인물들의 연기를 강조한 캐릭터영화라 할 수 있다.

삼류조폭 재문(설경구)은 친구를 죽인 대식(윤제문)의 고향 집을 찾아간다.

조직생활을 청산하고 귀향할 계획인 대식에게 복수의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대식의 집 주변을 맴돌던 재문은 대식 어머니(나문희)와 자꾸 마주치는 과정에서 모성을 느낀다.

그녀도 자식과 닮은 처지의 재문에게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두 가지다.

재문이 대책 없는 건달임을 보여주는 것과 그마저도 끌어안는 대식 어머니의 넉넉한 모성애다.

재문역 설경구는 탁월한 연기로 스크린을 완전히 장악했다.

작은 몸동작과 눈짓,말투는 천박하면서도 살벌한 조폭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는 눈꼬리를 치켜뜬 채 연신 침을 내뱉으며 막말을 쏟아낸다.

개에게 오줌을 갈기고,어린이들 앞에서 부하(조한선)를 마구 때리기도 한다.

"칼 쓰지 않아도 '너 내가 죽인다' 이거 하나만 (상대방이 내) 눈빛에서 캐치하게 만들면 그걸로 게임 끝이야." 부하에게 던지는 이 대사처럼 재문은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전형을 연기했다.

대식 어머니역 나문희는 자식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주기만 하는 모성애의 화신이다.

헌신과 희생이야말로 악랄한 인간마저 감화시키는 유일한 미덕임을 가르쳐준다.

이처럼 작품성은 좋지만 대중성은 약화됐다.

단선적인 플롯으로 주인공들의 행동만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보조인물들을 살리고,주인공들의 에피소드도 보강했더라면 훨씬 흥미진진했을 영화다.

6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