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20여년.아이들이 독립할 나이가 다 됐다.

그런데 앞뒤로 살펴보니 친구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퇴직해 연락이 닿지 않는가 하면 이민을 가고 누구는 병들어 누워 있으며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혼자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이유로 벗이 줄어드는 법.그래서일까.

'남자,마흔 살의 우정'(전경일 지음,21세기북스)은 '죽이 척척 맞는 친구'를 반드시 가지라고 권한다.

가야 할 길을 묵묵히 지켜봐주며 굽어가는 등에 손 얹어 주는 이가 있어야 외롭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오래 된 흑백사진 꺼내듯 묵은 된장 같은 옛 고향 친구들을 호출하고 빡빡한 세상살이에 지친 사회 동년배를 불러내 술잔을 기울인다.

공장에서 손가락 세 개를 잘린 동창이 "암에 걸렸어" 고백했을 때 제대로 위로도 못해 주다가 계절이 바뀐 뒤 부고를 받았던 사연은 애잔하다.

부인과 사별하고 폐인처럼 지내던 친구에게 "너만 심각하냐?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마음 속에 숯 한 가마니씩은 다 담고 살아"라고 충고해 다시 힘을 내게 만들기도 한다.

고학으로 대학을 마치고 독신일 때 집을 장만할 정도로 악착같이 살아온 친구가 느닷없이 사는 재미가 없다며 악기를 배우는 모습과 부러울 것 없는 대기업 임원의 귀향 등 변화에 대한 성찰은 그윽하고 깊다.

'나에게 오라.너에게 가마.' 새 친구를 만드는 요령,관계를 유지시키는 노하우도 눈길을 끈다.

우정은 오랜 시간 공들여 서로 닮아가고 그렇게 마음을 복사하는 것.깊은 가을,마음 가는 친구를 만나자.시인 김광규처럼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어도' 괜찮고 박인환처럼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해도 좋겠다.

284쪽,1만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