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 <시인 >

사는 일이 어느 한때인들 어수선하지 않을 때가 있을까마는 요즘 정치권이나 국민들이나 알고 있는 화두는 크게 봐서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의 핵실험 후폭풍이 한시 앞을 점칠 수 없이 돌아가는 것이고,하나는 일년 남짓 앞둔 대선의 판도가 어떻게 짜여 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는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게 하는 일찍이 부닥치지 못한 중대 사안이지만 북한이란 상대가 있는데다가 얽히고설킨 국제관계의 역학이 개입되고 있어 우리 국민의 의지나 결단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을 뽑는 일은 국민의 생각과 선택에 달려 있는 만큼 정치권에서나 머리를 싸맬 일이로되 국민들이 긴장할 일은 아니다.

그러면 왜 대선이 임박하면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가. 건국 이후 우리는 누구의 간섭이나 억압 없이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아왔다. 그러나 어느 대통령도 임기 중이나 퇴임한 뒤에 선택이 옳았다고 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 네 분은 모두 임기를 못 채우는 불행을 겪어야 했고 전두환,노태우 두 분은 퇴임 후에 투옥되는 수모를 당했으며 김영삼,김대중 두 분은 재임 시에 아들을 단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현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몇 개월 만에 탄핵의 고비를 넘겼는가 하면, 다수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 당의 간판을 내리자고 할 만큼 국민들로부터 박한 평점을 받고 있다.

이쯤 되면 이번에는 국민이 탄핵을 받아 마땅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건국 이후 줄곧 세종대왕에 비교되는 성군을 못 골랐을지라도 성공한 대통령을 선택할 줄 모르는 무능과 무분별을 저질러 왔으니 말이다.

여기서 나는 왜 우리나라는 시를 쓰고 생활화하는 전통을 가진 시의 나라인데 시인 대통령을 뽑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70년대 말 우리나라에도 다녀간 일이 있는 아프리카 세네갈의 셍고르 대통령은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던 시인이었다. 그는 재임 중에 시인들을 장관에 발탁하기도 했는데 정치를 잘했다고 세네갈 국민이 종신대통령으로 추대했으나 임기만 마치고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파리로 가서 살았다. 대통령 재임 때도 주말에 점퍼 차림으로 시낭송을 들으러 파리로 갔을 만큼 멋쟁이였던 셍고르. 시심으로 정치를 했기에 국민을 편하게 해주고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리의 역사에도 현실정치에 두각을 나타낸 큰 시인들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빛을 내고 있다. 고려왕조 오백년을 '단심가'한 수로 떠받치고 선죽교에서 쓰러진 포은 정몽주. 그가 남긴 많은 시들 속에서 '내 뱃속에 글이 있어 오히려 나라를 그르쳤구나(腹裏有書還誤國)'하는 시구에 이르면 글을 씁네 하고 붓을 잡고 있는 내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를 해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또는 해동공자(海東孔子)라는 칭호를 듣는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십만양병책을 내어 오늘 '율곡사업'이 생기기도 한 목릉성세(穆陵盛世)의 정치가이자 큰 시인이었다. 그런 현인도 '내 스스로 부끄럽구나 티끌세상의 나그네여,물가에 와 있어도 마음의 때를 씻지 못하였구나(自愧紅塵客臨流未濯纓)' 하고 권력과 이익을 마음속에서 떨쳐내지 못했음을 한하였는데 포은이나 율곡 같은 시인이 현세에 있다면 우리는 대통령감 걱정을 안 해도 되지 않았을까.

만해(萬海)의 시가 오늘토록 국민의 가슴에 파고드는 것은 승려의 몸으로 3·1운동에 각계인사들을 민족대표로 영입하는데 몸을 던졌던 그 애국 혼이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요,겨우 스물네 편의 시로 시문학사에 금자탑으로 서 있는 이육사의 시 또한 그가 항일 레지스탕스로 나라를 찾으려던 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북핵이 일어나자 민주화나 민중이니 하는 참여 쪽으로는 시를 쓰지 않던 정현종 시인이 한 일간지에 '무엇을 바라는가―핵실험에 부쳐'란 시를 발표해 회자된 일이 있다. 학자,언론인이 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시인이 목소리를 냈다고 해서 화제거리가 되었다. 그래 이제 시인들도 말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시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 정치도 바로 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