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의무적으로 가입해 소득재분배 효과를 도모하는 국민건강보험과 이를 보충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시켜주는 민영의료보험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역할분담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공보험 위주의 건강보험제도 운영에 한계를 느끼는 많은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의료산업선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 방안을 강구한다면서 오히려 법정 본인부담금을 금지하는 등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정책결정을 내렸다.

법정 본인부담금이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대상이 되는 진료비 등에서 환자본인이 부담해야 되는 금액을 말한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의 적용대상이 아닌 고급의료서비스나 신기술 등에 대해서는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데 이를 비급여 본인부담금이라고 한다.

2004년도 국민건강보험의 의료비 지불액은 16조1000억원이고,법정 본인부담금은 6조4000억원,비급여 본인부담금은 14조3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번 조치에 대해 정부는 민영의료보험에서 법정 본인부담금을 보장하는 것이 의료이용을 증가시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민영의료보험 가입자의 의료비는 139만원,비가입자는 164만원으로 추산된다.

즉 민영의보 가입자가 의료접근성이 증대돼 중대질병에 노출되는 것을 미연에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의료비 지출이 오히려 적다는 실증자료를 보더라도 그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공적보장이 잘 되어 있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도 법정 본인부담금 보장을 금지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부적절한 조치하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란의 사실 여부를 떠나,보다 중요한 문제는 국민건강보험과 민영의료보험 간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현재 각각의 제도는 서로를 보완하는 방향에서 역할을 하도록 하면 고령화 사회의 도래에 따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데도 국민건강보험을 위해 민영의료보험이 희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민영의료보험은 공적 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이 충분하지 않아 많은 국민들이 건강악화 시에 겪는 가계재정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국민건강보험을 위해 보장 영역을 축소하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 선택권 침해이자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부는 국무장관회의에서 내린 결정이라 하더라도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입법화를 늦추고 이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민영의료보험을 배타시하는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의견을 구하고 정리할 것이 아니라,국무총리실 산하에 민영의료보험 사업자,전문가 등도 참여시키는 가칭 공사건강보험발전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지하게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각 이해집단의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의 의료비를 효과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는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렇게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많은 복지선진국이 건강보험 및 의료제도 개혁을 위해 추진하는 정책 추세에도 부합할 것이다.

고복지 국가로 유명한 유럽 국가의 사례를 볼 때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추세는 공적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을 다소 낮추고 본인의 부담을 확대하되 이를 민영의료보험이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정부는 개방화 및 다원화,규제완화 시대에 맞게 건강보험정책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국민의 입장에 서서 지혜를 모아 과거보다 민영의료보험에 대해 진일보한 정책방향이 정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