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鍾國 < 전주대 교수·금융보함학 >

항상 정권 초기에는 과거에 불공정거래를 당했다며 관계당국에 각종 민원이 쏟아지곤 한다. 보험도 예외는 아니어서 관계자들로부터 사실을 확인하고 민원사항을 해결하는 데 진땀을 흘려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권력을 잡은 초기 정권의 힘을 믿고 시원한 해결을 바라는 민원인들의 사정도 있지만,일반국민들의 보험제도에 대한 이해부족이 겹쳐서 나온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보험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그렇기 때문에 보험산업은 어떤 산업보다 공공성(公共性)이 강조돼 세계 많은 국가들이 실질적 감독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재경부는 상품심사제도 중 일부 기능(보험료율의 검증·확인)을 금융감독원에서 보험개발원으로 이관토록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이다.

우선 이번 보험업법 개정작업 과정에서 재경부의 용역을 받아 실질적으로 작업을 주도한 보험개발원은 보험회사인 회원사 회비로 운영되는 사단법인으로서 회원사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법안을 성안(成案)하였다 하더라도 기관의 정체성 측면에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지금까지 보험료율 및 책임준비금의 심사를 보험개발원을 경유토록 한 것은 감독원의 업무 과부하를 막기 위해 보험개발원을 협조기관으로 삼은 편의적 제도였다. 그러나 심사권한이 부여된다면 그 의미가 협조기관에서 감독기관으로 변질된다.

언뜻 보면 감독권의 분점으로도 해석될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민원발생시 민원인이 보험회사의 분담금으로 운영되는 보험개발원의 성격을 문제삼아 심사에 대한 제척(除斥)을 주장할 경우 감독의 책임 소재가 분명치 않아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또한 사업방법서와 약관의 심사는 금융감독원이,보험료율 및 책임준비금 심사는 보험개발원이 각각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또 하나의 감독기구가 신설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하나의 보험상품을 심사하는 데 분석해야 할 요소는 사업방법서,약관,보험료율 및 책임준비금 제도인데 이를 따로 분리심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도 보험회사의 감독기관으로 재경부,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이 있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르는 판국에 상품개발 심사권을 이원화(二元化)시켜 또다시 보험회사를 옥죄는 것은 규제만 늘리게 돼 자율화 추세에도 맞지 않다.

뿐만 아니라 현행법 상 보험계리사는 재무건전성 업무와 상품개발 업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비해 개정안에는 책임준비금과 배당금 관리에 주력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상품개발 업무는 전문 보험계리사에 의하지 않고도 할 수 있다는 법리해석이 가능해 부실한 상품 개발이 우려되며 양질의 전문 보험계리사 양성도 요원해진다.

변화와 개혁은 공정성을 전제로 한 발전이라야 힘과 세력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그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는 세력은 지금까지 이룩해 온 보험산업의 성과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의 보험산업은 짧은 기간 동안 세계 7위,보험가입률 90%라는 경이로운 성과를 이룩했다. 외환위기를 겪던 시절 은행권이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을 때도 보험권은 비교적 건실하게 운영돼 상대적으로 적은 지원으로 그칠 수 있었다. 얼마 전 베이징에서 생활할 때에는 중국에 진출한 미국계 보험회사가 한국의 보험판매 제도와 상품을 연구해 중국시장에 활용하고 있는 경우도 보았다.

실질적 감독주의 아래서 엄격한 감독이 요구되는 보험업이지만,정책당국은 우리 보험업계의 저력과 성과를 인정하고 이중 삼중의 감독과 규제를 도모(圖謀)해서는 안될 것이다.

법 개정이 보험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이해 당사자들이 침착한 마음으로 지혜를 짜내야 할 때다.

/한국보험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