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에 쓰레기 매립장이 조성된다는 사실을 입주 예정자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아파트 건설업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얼마 전 나왔다.

주변에 위험시설이나 혐오시설이 들어설 경우 입주자로서는 속이 상할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손해배상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경기도 남양주시 청학지구 주공아파트 입주자 300여명은 1997년 분양이 시작됐지만 건설업자인 대한주택공사는 아파트로부터 800m 떨어진 곳에 쓰레기 매립장이 건설 예정 중인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달 가구당 400만원에서 1200만원까지 총 22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안전시설 미비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단호하다.

대구지법은 지난해 고령군 신촌리 인근 강에서 물놀이를 하다 숨진 정모군(6)의 부모가 고령군과 경상북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억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평소 강바닥을 고르게 유지하지 않았고 위험표지판 등으로 수심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고법도 지하철 승강장 추락사고로 다리를 다친 김모씨(58·여)가 서울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공사측의 안전시설 미비 책임을 물어 10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민사상 책임뿐 아니라 형사책임까지 묻는 경우도 있다.

2002년 부모와 함께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김모군은 넘어지면서 오른손이 에스컬레이터에 끼이는 중상을 입었다.

백화점측은 과실이 없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거부했고 김군의 부모는 백화점 점장 등을 고소했다.

법원은 "백화점은 어린이 등 여러 고객층이 이용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상업시설로 다른 어떤 시설보다 안전관리가 절실하다"며 백화점측에 벌금형을 내렸다.

그러나 도로 관리를 제대로 못해 빙판길 교통사고가 났다며 M보험사가 인천광역시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는 법원이 피고측 손을 들어주었다.

빙판길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통행자 개개인이 스스로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