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시카고 시민들 사이에는 독서열풍이 불었다. 시카고 시(市)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독서토론을 벌이자고 제안해서다.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이 다른 다인종 사회에서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데는 독서만한 게 없다는 주최측의 발상은 예상을 뒤엎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후 '한 권의 위대한 책으로 하나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시카고의 이상은 계속 실천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여러 지역에서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읽혀지고 있다. 배경이 캘리포니아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로드 일가의 고난한 삶이 여러 시각에서 토론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 읽기는 '한 책,한 도시(One Book,One City)'운동의 일환으로 미국 각지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발단은 시애틀이었는데,주민들의 풀뿌리 독서운동으로 승화되면서 미국 전역으로 번졌고,이제는 영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운동이 서산을 시작으로 원주 부산 청주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위기철의 '아홉살 인생',김형경의 '사람풍경'을 채택해 독서토론을 벌였다. 내년부터는 서울시도 동참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우선 일년에 한 권만 선정해 운동을 벌이고,성과가 좋으면 한 달에 한 권까지 도서를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시민 함께 책 읽기 운동'인 셈이다.

'한 책,한 도시'운동은 독서토론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높일 수 있을 뿐더러 문화체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다. "책 읽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북 스타트'운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인쇄매체의 대부격인 책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책은 이미지 매체와는 달리 이성적이면서 체계적이다. 또 사고를 유도하는가 하면 상상력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 책,한 도시'독서운동이 의견과 가치관의 대립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통합의 촉매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