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울산에 사는 친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친구는 서울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터라 다른 곳에 사는 친구들을 많이 그리워했다. 그래도 자기는 울산에 가족이 함께 살고 있어서 사정이 나은 편이란다. 직장생활을 위해 혼자만 울산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외로움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들 학비뿐 아니라 가족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집 한칸이라도 타 지역에 마련하려면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직업병이 도졌다. 울산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번 돈의 어느 정도나 울산 안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통계청 홈페이지에 있는 통계자료시스템의 지역소득계정을 찾아보았다.



2004년에 울산은 39조원의 소득을 올렸으나 울산 내에서 이뤄진 소비는 11조원에 불과했으며,울산 내에서 이뤄진 투자도 8조원에 불과하였다. 즉 울산에서 만들어진 자동차와 화학제품 등 소득의 50%가 넘는 20조원의 재화 및 서비스가 타 지역에 (순)수출되어 사용된 것이다. 국가 경제로 치면 울산은 GDP의 50%가 넘는 막대한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흑자에도 불구하고 울산에 사는 분들이 평균적으로 더욱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얼마 후 내년도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대단히 우려스러운 대목으로 많은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를 울산처럼 생산만 하고 소비나 투자활동을 거의 안하는 경제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이와 같은 우려는 지나친 감이 있다. 기본적으로 경상수지가 흑자인 경제가 '경쟁력'이 높은 경제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 수십년간 경상수지 적자를 지속하는 미국과 정반대로 흑자를 지속하는 일본을 비교하면서 미국에 비해 일본이 훨씬 살기 좋은 경제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상수지는 경쟁력의 척도가 아니다.

비슷한 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나타낸 해는 외환위기의 한 복판에 있었던 1998년이다. 당시 생산은 7% 이상 감소했으나 소비와 투자가 무려 11%와 23%나 감소함으로써 GDP의 12%에 해당하는 40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1998년이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경제 모습으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보다 최근에는 카드 빚 등이 문제가 되었던 2003~2004년에 극심한 소비침체의 결과 저축률이 상승하였던 정도 만큼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었던 경험이 있다. 역시 당시의 경제가 건강한 모습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느 정도의 경상수지가 적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경상수지가 균형 수준에서 크게 이탈하지만 않는다면 경상수지의 변동에 대해 지나치게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근의 우리나라 경제처럼 소비나 투자가 크게 늘어나지도 않는데 소득증가세가 더욱 정체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축소되는 모습도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해야 할 부분은 경상수지 흑자 축소 자체라기보다 그 원인이 소득증가세의 정체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제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를 꼭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성장률이지 경상수지는 아니다.

조동철 < KDI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