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정부의 손을 벗어났다.'

글로벌 경제를 지배하던 미국이 이제는 거꾸로 글로벌 시장의 힘에 압도당하고 있다고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11월20일자)가 보도했다.

이 잡지는 '선거도 바꾸지 못하는 것(What the election won't change)'이란 제목의 커버 스토리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중간 선거를 통해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부시 정부의 경제 정책에 수정을 가하더라도 이미 미국 경제는 글로벌 시장의 힘과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정책 효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이에 따라 달라진 환경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경제 이론이나 세계 경제를 조율할 글로벌 중앙은행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이 잡지는 주문했다.


○미국의 급속한 글로벌화

미국 경제도 급속하게 글로벌 시장으로 편입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세입 규모는 현재 2조4000억달러대이다.

미국의 수입액은 2조2000억달러로 조만간 세입액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미국인들이 정부에 내는 돈보다 외국인들에게 지급하는 돈의 규모가 더 커진다는 얘기이다.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한 미국의 수입액 비중은 1995년 12%에서 지금은 17%로 높아졌다.

미국 내 투자액 가운데 외국인들의 투자 비중도 7%에서 32%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대공황 이후 70년간 미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주체로 역할해 온 미국 정부도 이제는 미국 경제를 맘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상황이다.


○힘 잃은 정책 수단

글로벌화는 미국의 경제정책 수단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04년 6월 이후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17차례 인상했다.

총 4.25%포인트 금리를 올렸다.

FRB가 이처럼 돈줄을 죄었지만 외국 투자자들이 미국에 몰려들면서 금리인상 효과는 반감됐다.

실제로 2004년 연 4.6%였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아직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또 부시 정부는 감세 정책을 통해 수천억 달러를 경제에 쏟아부은 셈이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고용창출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생산 설비 등이 해외로 줄지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로버트 샤피로는 "전통적인 거시 정책의 효력은 과거만 못하다"며 "일자리를 크게 늘리고 임금을 올리는 방안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감세 정책이 적어도 연구·개발(R&D)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도 사그러들고 있다.

비즈니스위크는 따라서 펠로시 하원의장 내정자와 그가 이끄는 민주당도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온 재정적자 축소 정책의 효과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가져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도 중국과 인도의 등장으로 미국인들의 실질소득 감소세를 돌려세우기엔 역부족일 것이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새 접근법 필요

비즈니스위크는 결론적으로 경제 정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감세 정책의 기반이 된 공급측 경제학 등 기존 4대 경제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설득력 있는 정책적 기반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글로벌 경제에서 중요한 나라들을 묶어 조율하는 정책 메커니즘이 없다"는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공동 회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계 경제를 조정할 수 있는 글로벌 기구,예를 들어 글로벌 중앙은행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