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소득 재분배나 양극화 문제는 교육개혁을 통해 양질의 교육을 공급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테러 등은 문명 충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화와 근대화에 대한 반작용에 따른 것"이라며 "각종 사회적 가치 등의 붕괴는 제대로 된 제도와 정책을 개발하고 적용해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10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인적자원(인재)포럼'에 개막연설 연사로 참석한 후쿠야마 교수가 포럼 기간 중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과 대담을 가졌다.


○사공일 이사장=인재포럼에 참석하지 못했던 분들을 위해 포럼 때 발표한 내용의 핵심을 추려준다면.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인적자원 개발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사회적 변화를 강조했다.

정치적 변화로는 세계화,근대화를 들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연령구조 변화,수명 연장,출산율 저하,산업화시대 이후 여성의 노동력 편입 등이 주목되는 변화다.

반면 노동 수명은 더 늘어나 나이가 들수록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급여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인구 및 연령구조가 피라미드형에서 실린더형으로 변해 재교육과 이직을 감수해야 한다.

여성이 노동력으로 본격 편입되면서 가족구조가 변했고 노인 부양 부담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해외 노동력 유입으로 문화적 다양성도 보다 중요해졌다.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데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변화들이다.

○사공 이사장=가장 최근 저서인 '갈림길에 선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하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서의 입장을 바꾸었다.

그런 입장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후쿠야마 교수=몇 가지 이유로 입장을 수정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예방한다는 정책에서 접근했으나 위험한 정책이다.

문제 국가를 점령해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면 그만이라고 오판했다.

이라크 정책이 북한과 이란으로 하여금 핵 무기 개발을 억제토록 하기는커녕 핵무기를 개발토록 자극했다.

미국은 초강대국의 힘을 배경으로 그 힘을 다른 국가에 사용,영향을 미치려는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불필요한 반미정서만 키웠다.

지나친 자신감에,충분한 계획 없이 현지 국가재건(nation-building)에 나서는 등 일방적인 방식으로 정책을 펴는 탓이다.

○사공 이사장=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나 햇볕정책은 어떻게 보는지.

○후쿠야마 교수=한마디로 실패작이다.

한국 정부의 환상이었다고 본다.

채찍보다 더 많은 당근을 사용하는 게 더 좋은 접근방식이라고 여겼으나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다.

군사적인 대응을 취하지 않는다고 해서 외교적 노력이 더 잘 작동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다.

북한이 핵 실험을 한 이상 이제는 관련 핵기술이 북한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병마개를 꽉 틀어막아야 하는 게 과제다.

그래서 6자 간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특히 중국과 한국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사공 이사장=현재 상당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에 대한 견해는.

○후쿠야마 교수=1989년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일했을 당시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베이커 장관은 미국이 참가하지 않는다고 절대 반대였다.

일본에는 그 아이디어를 폐기토록 유도했다.

그런데 이후 내 생각이 바뀌었다.

이 지역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민족주의적인 문제에 의해 반중,친중으로 극단화되고 있고,미국과 일본 관계는 강화되는 반면 미국과 한국의 동맹은 약화되는 상황이다.

중국 영향력 속으로 혹은 미국 영향력 속으로 극단화돼 재편되는 양상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세안+3'이든 '아세안+6'이든 일본과 중국이 동아시아공동체 추진에 올바른 자세를 갖고 있고,이 통합체가 미국 이익에 저해되지 않는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사공 이사장=현재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후쿠야마 교수=학교에서 국제개발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선진국가들은 가난한 나라에 선진제도를 이식하는 데 실패했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발적인 힘으로 경제를 일으켜 세웠으나 아프리카 등 가난한 국가는 그렇지 않다.

빈국들의 경제개발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 인식하지만 이를 위한 제도 이식 등 정치적 실행이 관건이다.

아프리카 등 빈국들도 성공적인 선진제도 이식에 힘입어 세계화의 마차를 같이 타야 한다고 본다.

○사공 이사장=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범세계적 문제다.

일부에서는 세계화 탓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지식기반 사회의 산물이다.

이 격차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선 교육이 최선이라는 얘기다.

특히 공교육이 잘 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교육이 올바로 되지 않아 대부분 비싼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 결과 교육을 통한 세대 간 소득 재분배 경로가 무너졌다.

○후쿠야마 교수=미국도 마찬가지다.

공교육이 잘 안 되는 곳이 많고 고등교육을 시키는 데 돈이 많이 든다.

극빈자들은 장학금 등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어중간한 근로자 계층 등은 교육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어쨌든 교육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데 동감이다.

○사공 이사장='역사의 종언'이라는 저서를 쓴 이후 세계는 미국에 대한 9·11 테러 공격,스페인 영국에서의 테러 발생 등을 목격했다.

이라크 전쟁도 아직 진행 중이다.

마치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문명 충돌'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것 같다.

○후쿠야마 교수=9·11 테러를 계획한 주범들은 극소수 과격 이슬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문명 충돌을 대표한다고는 볼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9·11테러 이후 미국이 과도하게 반응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9·11 테러공격을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서 생각했다.

미국이 이라크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것도 전략적으로는 큰 실수였다.

군사적 개입은 오히려 이슬람인의 반미정서를 부채질했고 과격 테러리스트 세력을 더 자극했을 뿐이다.

헌팅턴 교수의 분석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일련의 양상을 전적으로 문명 간 충돌이라고 규정할 순 없다.

○사공 이사장=헌팅턴 교수는 세계화 과정을 본질적인 게 아닌 피상적인 것이며,세계는 오히려 문화적 가치와 종교에 따라 균열되게 마련이라고 주장하는데.

○후쿠야마 교수=헌팅턴 교수는 세계에 대한 문명의 영향을 과대평가한 반면 세계화의 영향은 과소평가했다.

세계화는 서로 다른 사회와 문명을 동질화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의 역할을 예로 들어보자.지식기반 사회로 넘어오면서 육체적 노동력은 덜 중요해졌다.

여성이 노동인구로 편입된 까닭이다.

다시 말해 노동력에 있어 여성 영역과 남성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은 문명적 결정요소가 아니라 세계화와 근대화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얘기다.

○사공 이사장=동감이다.

막스 베버는 오래전 유교가 중국 발전에 걸림돌이라고 했다.

1950년대 말,196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도 유교적 문화가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하는 주장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경제 개발에 성공한 이후에는 오히려 아시아적 가치 때문에 성공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제도와 정책이라고 본다.

1999년 출간한 '대붕괴'에서는 선진국들의 사회적 자본이 고갈되고 사회적 가치가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인간 본성의 회복과 교육 등 공공정책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규범이 이뤄진다고 낙관했다.

○후쿠야마 교수=대붕괴는 20세기 후반에 걸쳐 일어난 사회적 변화로 인해 초래된 것이다.

1964∼1965년부터 높아지기 시작한 미국 내 범죄율은 1988∼1989년 정점에 도달했으며 그 이후 낮아졌다.

젊었던 베이비붐 세대가 노령세대로 접어든 데다 정부가 경찰력을 동원,정책적으로 범죄를 강력하게 단속하게 된 결과다.

한편으로는 여성의 노동참여가 늘어나 공고한 가족유대가 무너졌고 이는 가정교육의 부실로 이어졌다.

사회 정책적으로 공교육이 이를 보완해야 했으나 불충분했다.

○사공 이사장=기술발전 속도가 사회적 자본의 공급속도를 앞지르게 되면 사회전체가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고,결국 정부가 개입하거나,정부가 발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후쿠야마 교수=과학기술 정책을 예로 들어 보겠다.

모든 국가가 과학관련 부처를 두고 과학관련 교육제도나 인프라를 구축해 과학 수준을 높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인 발견이나 성과는 국제적인 틀에서 달성된다.

정부는 그런 과정에서 국가차원에서 통제하려 든다.

국가 내 틀에 가두려고 하면 결과는 실망적이다.

○사공 이사장=하지만 '휴먼퓨처'라는 저서에서 무엇보다 생명공학 부문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는데.

○후쿠야마 교수=과학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정부의 개입 없이 발전하는 게 좋다.

다만 유전자 조작과 같은 성과들이 작은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게 우려된다.

윤리적,도덕적으로 민감한 문제다.

이런 문제에 대해 사회가 나서 개입하길 원하는 것이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진 이후 국제적으로 핵 확산을 방지하는 기구가 설립돼 작동을 했다.

1945년 당시 2년 내에 핵 보유국이 20∼30개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5개국으로 장기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8∼9개국으로 핵 보유국이 늘었지만 핵 확산을 틀어막는 국제적인 기구가 어느 정도 작동했다고 봐야 한다.

이에 비해 현재 생명공학 기술은 다루기가 더 까다롭다.

국제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국제적 협조가 필요하다.

○사공 이사장='트러스트'라는 저서에서 한국과 중국을 일본과 독일에 비해 저신뢰 사회로 규정했다.

저신뢰는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10여년간 한국과 중국은 일본과 독일에 비해 높은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후쿠야마 교수=신뢰만이 경제성장을 결정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른 요소들도 많이 영향을 미친다.

또한 고신뢰 사회가 항상 경제적인 이점을 낳는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고신뢰적인 제도가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일본은 2차대전 후 30년간 고신뢰 사회를 구축했다.

1990년대까지 종신고용제,연공서열제 등 고신뢰 사회를 구성하는 탄탄한 제도들이 정착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이런 제도는 오히려 방해가 됐다.

구조조정 시기에 부실한 금융기관 등을 마땅히 파산시켜야 했으나 게이레츠(계열) 등 관련 조직들의 반발이나 제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트러스트가 만능은 아니다.

○사공 이사장=같은 맥락에서 네트워킹이 중요한 정보기술(IT)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고신뢰 사회가 유리하다고 주장했는데.

○후쿠야마 교수=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미국에서 고신뢰 사회의 전형이다.

이곳에서는 법률 계약의 건수 등이 보스턴이나 뉴욕보다 적다고 한다.

공급업체,계약처,기업가,벤처캐피털리스트가 서로 정직하게 비즈니스하기 때문에 사기 등이 드물다.

PC 운영체제인 소스코드를 공개한 리눅스도 실리콘밸리 지역이라는 고신뢰 사회의 한 규범이라고 할 만하다.


[ 후쿠야마 교수는 - '역사의 종언' 펴낸 일본계 이민 3세 ]

정치학자이자 역사철학자로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붕괴하기 시작한 1989년 논문 '역사의 종언'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조지 W 부시 정부의 대외정책을 관통하는 신보수주의(네오콘: Neoconservatism)의 이론 틀을 마련한 그는 올해 '기로에 선 미국;America at the Crossroads' 출간을 계기로 네오콘과 결별을 고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의 섣부른 이라크 무력 침공이 역효과를 초래했다면서 부시 정부의 한계를 통렬히 비판했기 때문이다.

1995년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쟁 시스템과 함께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내용의 저서 <트러스트;Trust>를 출간했다.

1952년 미국 시카고에서 일본계 이민 3세로 태어났다.

코넬대에서 서양고전을 전공한 뒤 예일대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96년까지 랜드연구소에서 선임연구위원을 지내면서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 차장을 역임했다.

2005년부터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미국 대통령 직속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며,인간 복제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한 <휴먼퓨처(Our Posthuman Future);부자의 유전자,가난한 자의 유전자>도 출간했다.

정리=김홍열·김유미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