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작품에 등장하는 누드모델은 30대 포르노 배우입니다.

지금까지 여체의 은밀한 부분을 숨겨진 상태로 표현했지만 이 모델을 통해 묘한 영감을 받아 성적인 육감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어요.

하루 4시간 모델료로 50만원 정도 지불하는데 보통 누드모델료 보다 3배 이상 높지요.

포르노 배우답게 감정을 넣지 않고 포즈를 취한다는 장점이 있고 숨겨진 부분을 자연스럽게 내보여줍니다."

원로화가 김흥수 화백(88)은 미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루 4~6시간씩 신들린 듯 여자 누드를 그리고 있다.

서울 평창동 '김흥수미술관'에서 만난 김 화백은 대뜸 "내 그림을 언뜻 보고 춘화라고들 하지만 여체를 통해 인간의 희노애락을 묘사한다"고 강조했다.

김화백은 누드화를 자유자재로 그리는 것은 이제 어떤 것을 봐도 유혹에 빠지지 않는 나이가 됐고 성적인 포즈를 예술적인 의미로 승화시킬수 있을 만큼 성숙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性)과 성(聖)은 결국 통한다고 역설한다.

"예술적 정서라는 것은 정신적 수양과 감각을 통해 얻어집니다.

성적인 에로티시즘의 단계를 넘어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불교정신을 담아낸 것도 이런 차원입니다.

에로티시즘만 배어있다면 작품이 아닌 '장난'에 불과하죠.부처님의 성스러운 분위기는 누드를 통해서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에 집착하지 않고 내면을 좇다보면 예술의 극치와 종교의 극치가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

누드화를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을까.

그는 "1945년 일본 국립도쿄예술대학 시절 기성작가들의 누드화 작업을 보고 매력을 느꼈다"며 "사람 개 돼지 등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그리는 것이 힘들고 귀신 등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것은 쉽다"고 말했다.

"1985년 대한적십자사가 80주년 기념으로 대형 벽화제작을 요청했을 때 누드화를 그려줬어요.

지금도 대한적십자사 현관에는 5m짜리 누드화 '낙원의 봄'이 걸려있습니다.

누드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이 작품으로 일깨워주고 싶었어요.

성추행 같은 것이 없는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바로 누드화의 원천인 동시에 에너지인 셈이죠."

그는 또 "단원 김홍도의 춘화와 비교할 때 그는 풍속화처럼 그렸기 때문에 내 작품과 차원이 다르다"며 "누드화를 상스럽게 보지 않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면 예술의 역할은 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흥수 화백은 1970년대 이후 추상과 구상을 동시에 표현하는 하모니즘 화풍을 선도했으며 지난 1992년 제자 장수현씨와 43세라는 나이차를 딛고 결혼해 커다란 화제를 일으켰다.

김화백은 현재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흥수 미술관'에서 어린이 화가 지망생을 가르치는 '영재미술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부산 광안동 도시갤러리에서 개인전(17일까지)도 열고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