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賢雨 <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 >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에서 친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2명을 포함해 51석을 차지하고,하원에서도 232석을 획득함으로써 상·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 됐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지배하는 미 의회 아래에서 한·미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이목이 쏠렸다.

이와 함께 또하나 주목받은 것은 미 국내적으로 부시 대통령의 독선적 정치가 선거패배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대목이다. 2004년 부시가 재선에 출마했을 때 선거전략의 핵심은 보수주의자들의 결집이었다. 중도를 수용함으로써 지지를 확대하는 전통적인 선거전략을 버리고 미국사회의 갈등을 촉진시킴으로써 잠재돼 있던 보수주의자들을 선거장으로 끌어냈다. 이념적 갈등 증폭을 동력으로 한 선거전략은 그에게 재선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2004년 선거가 끝난 후 식자(識者)들은 이제 미국은 'United States'가 아니라 'Divided States'라는 혹평으로 미국의 양극화를 우려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집단이 양보와 타협을 통해 전체의 의사를 수렴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히려 사회갈등을 조장한 것이 2004년 미국 대선이었다. 집권 2기에 부시 행정부에서는 민주주의의 필수요소인 다양성과 관용(tolerance)은 무시되고,종교적 근본주의에 입각한 선(善)과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국내외 정치를 판단하는 인식 틀이 됐다. 테러 억제를 볼모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자국중심의 외교정책은 국제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 부시 행정부에 불만을 가진 중도 유권자의 투표율이 높아졌고,중도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이 새로이 의회로 진출했다.

이처럼 단기적으로 갈등을 이용해 지지를 확대할 수는 있지만 국가지도자로서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대통령 지지도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선 대통령인 클린턴과 레이건의 이맘때 인기도는 각각 66%와 55%였다. 이번 선거 직전 부시의 지지도는 38%로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됐던 닉슨 이후 최하다. 그 이유는 부시가 갈등에 기초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면서 여론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부시 대통령의 행보가 관심을 끈다. 선거패배 후 즉각 네오콘의 대표인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교체한 것이나,민주당 대표와 적극 협조하겠다는 대통령 연설을 미국정부의 외교정책 변화로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

대통령의 실질적 권력은 국민들의 지지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통령이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결과를 애써 외면하면서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선거는 여론을 공식적으로 측정한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면 대통령이 실패한 것이지 국민들이 우둔하기 때문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그렇게 작동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민주주의에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들이 늘 옳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권주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늘 그렇듯이 선거공학적 계산에 따른 합당이나 분당 등의 소문이 무성하다. 그러나 국민들이 현 정부에 실망했기 때문에 무조건 다른 정당을 택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誤算)이다. 국민들은 대안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정당을 원하고 있다. 정당은 국민이 미움의 투표가 아니라 지지의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정책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은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 독선의 정치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실패한다는 것을 보았다면 더 이상 편을 가르는 미움의 정치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분명히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화당 지배의 행정부와 의회에 대한 불만이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중도 성향을 강조한 민주당을 대안으로 인정한 중도 유권자들이 동원됐던 것이 또 하나의 이유였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