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우리 경제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자본수지 적자에다가 재정수지 적자까지 겹치면서 쌍둥이 적자보다 한술 더 떠 '세 쌍둥이 적자'가 나타날 상황에 처해있다.

게다가 북핵위기의 지속,대선국면,그리고 치솟은 부동산 가격 등의 변수가 겹치면서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악의 상황이 예상되고 있다.


브레턴우즈 시스템의 핵심인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이양한 후 국제금융시장은 일단 평온을 찾았지만 달러의 위기는 1980년대 중반에 다시 찾아왔다. 제2차 위기는 쌍둥이 적자라는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1981년 취임한 레이건 대통령은 감세정책을 무기로 들고 나왔다. 그 이론적 배경은 유인체계로서 세금의 역할을 강조한 공급 중시 경제학이었고 그 중에서도 래퍼곡선이라는 이름의 그래프가 사람들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세율이 0이면 세금은 0이다. 이제 세율을 올리면 세금수입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세율이 늘다가 100%가 되는 가상적 상황에서 세금수입은 어떻게 될까. 세금수입은 0이다. 왜냐하면 정부가 소득을 100% 걷어 가면 아무도 투자나 근로를 안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아이디어는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파되었다. (이 그래프의 설득력은 국회의원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 세율은 매우 높아서 적정수준을 넘었기 때문에 세율을 낮추는 것이 오히려 투자와 근로 의욕을 증대시켜 세수증대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논리가 감세정책의 기본원리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감세를 추구하는 동시에 레이건 대통령은 군비확장을 추구하였다. 소위 스타워즈계획을 포함한 방대한 국방예산지출을 하면서 군비를 확장시켰고,결국 덜 걷고 더 쓰는 과정에서 재정은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늘어난 재정적자를 결제하는 과정에서 국채발행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국채발행 규모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채권 가격의 하락과 이로 인한 금리상승이 이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 장기국채는 전 세계 기업이나 국가가 아주 선호하는 장기안전자산이기 때문에 발행을 늘여도 소화가 잘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처럼 금리까지 상승하자 미국 국채를 사들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돈이 모이기 시작했고,국채를 사기 위해서는 우선 달러를 사들여야 했으므로 달러 수요가 증가하면서 달러 가치의 절상이 이어졌다. 한 나라의 통화가치절상은 곧 수입 증가와 수출 감소를 통한 무역수지의 악화로 이어진다. 결국 재정수지 적자가 무역수지 적자로 이어지면서 소위 쌍둥이 적자(twin deficit)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쌍둥이 적자가 지속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기축통화발행국으로서의 미국은 달러에 대한 신뢰를 유지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결국 미국은 1985년 9월22일 소위 '플라자합의'를 이끌어낸다. 핵심은 달러 절하 및 기타 통화절상이었는데 당시 미국에 대해 엄청난 흑자를 기록하던 일본이 주로 표적이 되었다. 결국 1달러당 240엔대에 머무르던 환율이 약 1년 만에 120엔대까지 하락하는 놀라운 엔 절상이 이어졌다.

엔이 고평가되고 달러가 절하되자 우리나라가 신이 났다. 1980년대 초반 외채위기를 거론할 정도로 악화되던 한국 경제는 엔고라는 대형호재에다 유가 하락과 금리 하락에 힘입어 소위 3저호황으로 불리는 대형호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986년부터 50억달러,100억달러,150억달러 수준의 놀라운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졌고 이처럼 화끈(?)한 경상수지 흑자행진은 한국 경제를 단숨에 중진국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본 제품과 종류는 비슷하나 저가품목을 생산하던 한국 경제가 일본 상품이 잠시 주춤한 틈을 타 일대 도약을 한 것이다. 쾌거를 이룩한 부문 중 하나가 자동차의 미국시장 진출이었다. 품질도 기술도 다소 부족한 상태에서 엑셀이라는 브랜드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미국시장에 진출해 20여만대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이 모든 것이 플라자합의를 통한 엔고라는 예기치 않았던 상황으로 인해 가능하게 된 것을 보면 한국 경제의 저력을 느끼는 동시에 거꾸로 우리가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 내에서는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적인 속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채매입을 통한 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결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경제가 가진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지위 덕분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의 쌍둥이 적자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자본수지는 흑자였다.

우리나라에서 내년도에 예상되는 세쌍둥이 적자는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세 쌍둥이 적자가 나타나면 외환보유고가 줄어들게 되고 이러한 움직임은 대외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제 달러를 퍼내기 위해 만든 해외부동산 매입자유화 같은 정책은 재고되어야 하며 환율의 적절한 조정을 통해 수지 적자를 최소한 균형 수준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선제적 노력이 필요하다. 1997년 대선이라는 어지러운 국면에서 "어어" 하다가 발생한 외환위기의 교훈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을 때이다.

/서울시립대 교수 chyun@uos.ac.kr